#6. Bastard, baby
epi. 1
비릿한 냄새와 숨을 틀어막는 듯한 열기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벌써 몇 해 째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해왔는데도 입국장에 들어서면 처음 한국을 떠날 때처럼 퍽퍽한 마음이 든다. 한국의 사계절이 한 번씩 지나도 난 항상 무더운 여름에 있었다. 해가 먼저 뜰 새라 새벽부터 바삐 공항에 나와도 그곳에 도착하면 이미 해가 넘어간 뒤였다. 도통 편해지지 않는 언어로 친구들에게 도착을 알렸다.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언어였다. 몇 년 만에 이곳에 다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서른여 명의 동창들이 모이는 자리는 호텔 그랜드볼룸에 마련됐다. 재력가의 자제들이 모인 학교였으니 그 정도는 누군가의 지시로 쉽게 준비되었다. 물론 한국 서민의 딸은 어림도 없는 일이다. 호텔로 들어와 간단히 샤워하고 누웠다. 내일이면 나 혼자만 비루했던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 붙이지 못하고 눈치 보기 급급했던 나와 마주할 것이다. 그곳에 걔도 있겠지, 하고 불현듯 머릿속의 플래시가 터졌다. 오늘은 이만 자자했으나 전혀 잠에 들지 않는 밤이 지났다.
몇 년 만에 다시 보는 친구들의 얼굴엔 성숙과 여유가 묻어났다. 화장기 없는 얼굴로 긴 교복 치마를 펄럭이며 뛰놀던 여자애들도, 세월이 묻지 않은 얼굴에 시큼한 땀 냄새를 풍겨오던 남자애들도 그 자리에 없었다. 다만 화려하게 치장하고 고급스러운 옷을 입은, 매혹적인 향을 풍기는 성인남녀들이 서로를 은근슬쩍 훑어볼 뿐이었다. 내 옷장 속 가장 값비싸고 포멀한 착장으로 골라왔지만 따라잡기엔 무리다. 혼자 걷기도 힘들어 보이는 본격적인 이브닝 가운을 입고 온 그들과 비교하면 나는 3단 웨딩 케이크와 초코파이 같았다. 어떤 이들은 해외에서, 어떤 이들은 자국에 남아 크고 작은 일들을 하고 있다. 영어가 굳어버려 이해의 속도가 느려진 나는 그들과의 간단한 대화 중에 생기는 미세한 공백이 어색해 대화를 다급히 마무리했다. 빨리 P와 M을 찾아야 한다. 그들과 만나기 전에 걔와 마주쳐버린다면... 순간 간담이 서늘해졌다. P와 M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들이다. 그들은 특별하게도 나의 남사친이고 평범하게도 게이이다. 그 둘의 캐릭터는 비슷하면서도 다른데, P는 붙임성이 좋고 두루두루 가볍게 친해질 수 있는 광범위한 영역의 사람이다. M은 순수하고 밝지만 조금 마니악 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의 취향은 괴기스럽지만 다정하고 배려가 넘치는 근육맨이다. 둘 다 내겐 사랑스러운 게이 프렌드이다. 그들과 이런 약속을 했었다. 40대에 우리가 아직도 결혼을 못 하고 있다면 서로와 결혼하자고. 외로운 여생 쓸쓸히 지내지 말자면서 말이다. 40대는 이제 머지않은 미래가 되었고 나는 아직도 미혼이다.
열다섯. 매일 마주해야 하는 일상에 싫증이 나던 때 현실도피하듯 그곳으로 떠났다. 신분제도처럼 나누어져 무리를 이루는 한국 중학교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게 만들었다. 자아를 찾지 못한 나는 매일 방문을 꽝꽝 닫으며 엄마에게 분풀이를 했고 일상의 조그마한 균열에도 자존심이 상하고 화가 났다. 세상이 나를 따돌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뭔가 특별하다고, 남들과는 다르다고 항상 백일몽 속을 거닐었다. 그리고 유학을 선택했다. 이국적인 배경 속 외국인 친구들 틈의 나의 모습을 상상했다. 유창한 영어, 반짝이는 햇살, 영원한 우정... 마치 하이틴 영화 주인공처럼 밝은 모습으로 새 삶을 시작하는 나를 보니 꼭 떠나야겠다 싶었다. 그리고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시절을 내 삶에 가장 암담한 시간으로 꼽는다. 한국과는 다를 줄 알았던 그곳의 학교생활은 한국과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누군가는 상위 계급을 차지하고 누군가는 하위 계급에 속하며, 누군가는 으스대고 누군가는 아첨하는 피라미드 구조는 어느 나라나 똑같은 것이었다. 그 사이 나는 계급에도 끼지 못하는 이방인이었고 등교하면 말 걸어주는 친구가 없어 내가 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답하는, 자아를 찾기는커녕 있는 자신마저 지워내는 1년을 보내야 했다. 그 시절 나는 매일 학교 가는 차 안에서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했다. 오늘은 혼자가 아니길, 누군가와는 이야기할 수 있길.
투명 인간처럼 지내던 내게 어느 날 P가 다가왔다. 한국 김치가 그렇게 맵냐며 말을 건 P는 자기 친구가 김치를 먹고는 맵다며 바로 뱉은 이야기를 하며 자기도 김치를 먹어볼 수 있냐고 했다. 다음날 나는 도시락으로 싸온 김치를 P에게 조금 맛 보여 주었다. 그렇게 P는 매일 나와 함께 점심을 먹어주었고 그 후로 나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P의 친구이던 M을 소개받고 그들과 어울려 다니며 입을 떼고 다른 이들과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우리는 먼지가 이는 비포장도로를 걸어 맥도날드에 갔고 배를 타고 근처 섬에 놀러 갔으며 길거리 음식으로 배를 채웠다. 늘 깔깔거리며 별것 아닌 것에 배를 잡고 웃었고 더러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교복 엉덩이 부분이 반질반질해질 때까지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P와 M을 졸졸 따라다니던 나에게 매일같이 짓궂은 장난을 치던 남자애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걔는 항상 나의 사선 뒷자리에 앉아 내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하고 내 반응을 보며 자기 친구들과 낄낄대고 웃기 바빴다. 둥그런 얼굴에 눈꼬리가 쳐지고 키가 작고 몸은 꼬챙이처럼 마른 남자애였다. 수업 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나를 툭툭 건드는 그 애가 정말 진절머리 났다. 영어도 못하고 그 나라말도 못 하던 때 나는 화를 낼 방법 없어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무시했지만 언어가 조금 익숙해지고 나서는 나도 똑같이 반응했다. 나는 그 애를 사탄이라고 불렀다. 한국에서 온 얌전한 모범생의 역할을 맡고 있던 나의 존재가 선생님들 눈에 띄기 시작한 것도 그쯤이다. 소리 없이 조용하던 내가 반응한 게 재미있었는지 그 아이는 더 자극된 모습이었다. 재미있어 죽겠다는 그 얼굴에 열이 받았다.
시니어 이어가 되었을 때 우리는 모두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언어가 익숙해진 나는 친구들과 지내는 게 좋았다. 졸업학년이 되어서야 학교에 완전히 적응한 나는 수업이 끝나면 매일같이 친구들과 함께 쇼핑몰에 가거나 그들의 집에 놀러 갔다. 해가 뉘엿뉘엿 져가는 황금빛의 그곳에서 나는 더 이상 이방인이 아님을 느꼈다. 그 아이는 여전히 짓궂었다. 키가 한 뼘이나 커버린 그 애는 몸집이 더 커졌고 얼굴선이 굵어졌다. 어느 날 그에게서 문자가 왔다. 'hey'로 시작한 문자는 며칠이 지나도록 끊기지 않았다. 탁구공이 통통 오가는 것처럼 가볍고 질기게 이야기는 이어졌다. 매우 사소한 이야기들이었다. 오늘 숙제는 뭐냐, 내일 퀴즈가 있냐 하는 일상적인 대화였지만 왠지 싫지 않았다. 그 애를 실제로 마주할 때보다 훨씬 부드러운 단어들로 대화가 이어졌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 애는 순수했고 다정했다. 분명 사탄일 거라 생각한 그 애는 나의 첫 남자친구가 되었다.
분기간 이의선
分期間 李宜宣
* 어느덧 유월의 한창을 지나고 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이 축축하고 공기가 뜨거워지는 것을 보니
기억나는 시절이 있어 약간의 각색을 더해 이야기를 써 보았습니다.
이번 이야기는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둔 소설입니다.
이번 [Bastard, baby]는 조금 빠른 호흡으로 써보려 합니다.
재미가 사라지지 않았을 때 다음 편을 보내겠습니다.
이의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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