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분기간 이의선]의 작가이자 글감, 이의선입니다. 이렇게 메일로 만나게 되어 정말로 반갑습니다! :)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마음이 매우 들떴습니다. 우선 오랫동안 혼자 써왔던 글이 누군가에게 정식으로 읽혀진다는 사실에 신이 나고 동시에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고 느끼한 글을 쓰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도 됩니다. 그럼에도 도전해보고 싶은 건 아무것도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작년 한 해 동안 배웠기 때문입니다.
올해 저는 한국 나이로 서른이 되었습니다. 비록 꿈꾸던 일을 하고 있지 않지만 잘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돈을 벌고 약간의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데요. 만일 내가 돈과 꿈을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시작해도 문제없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칼을 뽑아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연인에게 보내는 러브 레터를 장난스레 연재 형식으로 보내었는데 그게 퍽 재미있어서 이왕 하는 것 여러 사람에게 보여주자 싶었습니다. 그래서 뻔뻔하게 [분기간 이의선]이란 요상한 오마주도 해보았습니다. 제가 뽑아든 칼이 무를 자를지 잼을 바를지 누군가의 마음에 꽂힐지 아직 잘 모릅니다. 흐지부지하게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넉넉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혼자 너무 긴 축사를 띄운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만 그만큼 즐겁게 쓰겠습니다. 몇 편을 쓰게 될지, 주기는 어떻게 될지 확답을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봄이 시작될 때 온기를 담아 쓰고 날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 쉬어가며 다시 인사말로 찾아오겠습니다.
바쁜 하루에 시간을 내어 제 글을 눈에 담아주시고 마음으로 공감해 주세요. 혼자 보기 아깝다 느끼시면 지인에게 추천해 주시고 저에게도 좋은 점, 나쁜 점 가감 없이 알려주시기 바라요. 같은 마음으로 늘 기다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이의선 드림.
사랑하는 이와의 미래를 그리는 일은 피상적인데가 있다. '우리 같이 살자', '우리 평생 함께하자' 등의 이야기에는 각자가 짊어지게 될 삶의 무게는 슬그머니 빠져있기 때문이다. 장난스러운 모습을 한 채 평생 도란도란 수다나 떨며 늙어가자고 한다. 그와 나는 늘 말한다. 너와 함께하는 매일이 얼마나 좋을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 얼마나 멋질지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서로의 삶에 침범할 것인지,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 방법으로 각자의 삶을 포갤 것인지 구태여 이야기하지 않는다.
일상 속 우리 둘의 모습은 원초적이기 그지없다. 여름이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커피를 마신다. 찬바람이 부는 계절에는 고양이 털이 덕지덕지 붙은 부드러운 긴 소매 옷을 입고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시야를 가리는 앞머리는 집게핀으로 대충 집어 놓고 책을 읽는 내 앞에 긴 손가락으로 타닥타닥 키보드를 치는, 머리에 까치집을 단 그가 있다. 어디 하나 꾸미지 않은 그 멀건한 얼굴을 보며 이 사랑을 계속하고 싶다 생각한다.
집을 거룩한 성(城)이라 여기는 나는 유난스레 집을 가꾼다. 다행히도 그는 성가신 집안일을 곧잘 해치워준다. 수챗구멍에 모인 내 머리카락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끈적한 액체를 생색도 안 내고 깔끔하게 치워준다든지, 가까스로 심지에 붙어있는 두루마리 휴지를 새것으로 교체한다든지의 일들 말이다. 고양이 두 마리가 수시로 들락날락하는 고양이 화장실은 배설물들이 생기기 무섭게 그의 손에 사라진다. 그만 수고하는 것은 아니다. 설거지를 싫어하는 그를 대신해 그릇을 헹구고 내 요리가 제일 맛있다는 그를 위해 나는 끼니를 챙긴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우리의 일상이다.
요전날에 산부인과에 갔다 왔다. 비뇨기과에서 검진을 받은 그가 이상 소견을 받았기 때문이다. 검진을 받고 보니 나 또한 치료가 필요했고 수일 동안 약을 먹고 검사를 하고 또 약을 먹었다. 병원을 오가며 잠시 생각했다. 성(城)을 공유하고 성(性)을 나누는 사이에서 책임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존재의 크기만큼 책임의 무게도 커지기에 각자가 쾌히 견딜 수 있는 성장이면 좋겠다.
아침의 공기에서 봄 냄새가 난다. 차가운 바람 속에 아주 은밀한 따스함이 섞여 있다. 우리 걷던 길가에는 키 큰 플라타너스 나무가 주욱 늘어져 있고 한 품 큰 셔츠에 얇은 끈 나시를 받쳐 입은 나는 그의 크고 축축한 손을 잡는다. 아홉 번째의 계절을 맞는 우리는 마치 봄을 처음 겪는 양 감탄하고 한껏 허술해진다. 그 속에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며 배실 배실 웃으면 그는 아주 소중한 것을 보는 것처럼 찬찬하고 꼼꼼히 내 얼굴을 눈에 담는다. 그 시선이 봄이라 그를 떠올리면 따뜻한 늦봄이 생각나는지도 모르겠다.
대화 한가운데 나는 대뜸 '내 사랑의 유효기간은 2년이야. 너도 얼마 안 남았어. 항상 긴장해'라고 말하곤 한다. 그럼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앞으로도 더 사랑해 줄게. 그러니 그 유효기간 수정해줘.'
낯선 이들이 만나 서로의 다름을 감내하고 불편과 수고스러움을 설렘의 성가심으로 여긴다. 내가 이만치 그의 영역에 들어선 만큼 그도 저만치 나의 영역에 들어와있는 것이다. 온전히 내 것이었던 시간과 공간이 할애되어 작아지면 그를 탓하게 되리라. 내가 얻은 것은 모르고 말이다.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키워 나가기로 하자. 내 것이 너의 것으로 포개어지고 너의 조각이 나의 조각으로 바뀌어도 베어 둔 땔감이 많아 조급해지지 않을 만큼. 그러다 깨어난 한 날에는 너와 내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을 테니.
2022년 봄 냄새를 맡으며,
의선.
분기간 이의선
分期間 李宜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