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우리는 함께가 처음이라
매일 새벽 여섯시 반에 알람이 울린다. 겨울이 다가오는지 그 시간에도 사방이 깜깜하다. 다리 사이에는 고양이 두 마리가 배를 뒤집어 까고 누가 엎어가도 모르게 아주 깊은 잠에 들어있다. 그는 한참을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다가 마침내 일으켜지지 않는 몸을 이끌고 화장실로 들어간다. 어느새 일어난 고양이들은 시원한 기지개를 켜고 바쁘게 몸단장을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씻고 나온 그가 비누냄새를 풍기며 나의 이름을 부른다. 그러면 나는 조금 전 그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일어나 앉아 떠지지 않는 눈을 힘겹게 뜨며 거실로 나온다. 산발이 된 나를 보며 그는 웃는다. 그리곤 잘 잤냐는 인사와 함께 나를 꼭 안아주고 로션이 채 마르지 않은 입술로 내 입술에 촉촉하고 가벼운 뽀뽀를 건넨다. 깨끗한 정장 셔츠에 넥타이를 고쳐매고 만질만질하게 광이 나는 구두를 신은 그가 출근을 한다. 매일 아침 배웅하지만 왠지 모르게 애틋하고 안쓰럽다. 나도 서둘러 출근 준비를 시작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고양이들이 도어록 소리를 듣고 현관으로 내려와 나를 보고 시원한 하품을 한다. 손을 씻고 고양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인사를 하고 서둘러 청소를 시작한다. 고양이 두 마리의 털과 사람 두 명이 만든 먼지가 바닥을 뒤덮고 있어 하루라도 청소를 게을리하면 금방 바닥이 지저분해지고 만다. 맨발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이 없는지 확인하며 꼼꼼히 청소기를 돌린다. 회색 털 한 뭉치와 여러 먼지가 빨려 든 청소기 통을 비우면 얼마나 개운한지 모른다. 첫번째 미션을 클리어 한 나는 옷을 갈아입고 바로 두 번째 미션에 도전한다. 주말에 장 봐온 것들로 만들만한 것이 있는지 생각해 본다. 일단 냉장고부터 열어 사용할 만한 재료들을 모조리 꺼내 놓는다. 냉동 대패삼겹살 한 다발, 엄마가 준 김치, 마늘, 두부, 냉동 비건 만두를 일단 꺼내어 봤다. 머릿속으로 메뉴를 얼추 정했다. 그가 좋아하는 미역 된장국을 끓이고 대패삼겹살과 김치가 들어간 두루치기를 볶아 내고 두부를 데친 다음 비건 만두를 구울 작정이다. 군만두까지는 너무 과한가 싶다가도 마트 아줌마가 맛있다고 꼭 먹어보라고 했으니 몇 개만 구워서 먹어보기로 한다.
내장과 똥이 제거된 멸치와 다시마 두 장으로 된장국의 육수를 만든다. 내장과 똥을 발라 낸 멸치는 아주 예전에 그의 어머니가 수고롭게 손질하셔서 커다란 한 봉지로 보내주신 것이다. 그 한 봉지로 근 일 년간 나는 국과 찌개의 육수를 내고 있다. 다시마는 물이 끓기 전에 넣어야 맛이 나고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멸치를 넣어 보글보글 끓여준다. 국물이 뿌옇고 은은한 빛을 내면 멸치를 건져내고 된장을 푼다. 끓여 낸 멸치들은 큰 뼈와 대가리를 제거해 고양이들에게 내준다. 마르고 바삭한 사료만 먹던 아이들이 촉촉하게 수분을 머금은 멸치를 눈 깜짝할 새 다 먹어 치운다. 된장이 풀린 물에 미리 불려 둔 미역을 넣어 한소끔 끓여 내면 끝이다. 그가 집에 올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하며 다음 요리를 한다.
엄마가 올가을에 한 총각김치의 무청을 잘라내고 파김치를 더 얹어 대패삼겹살과 함께 볶아 낸다. 대패삼겹살은 냉동이라 자칫하면 잡내가 날 수 있으니 마늘과 함께 먼저 볶아 일차로 냄새를 잡고 미림을 한 숟갈 뿌려 어느 정도 익혀야 한다. 그리고 꺼내 놓은 김치와 길게 썬 양파를 넣고 조금 센 불로 볶아 준다. 김치가 신맛이 나니 설탕으로 맛을 잡아주고 간장으로 간을 한다. 요리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눈은 시계로 향한다. 따뜻한 음식을 먹게 해주고 싶은 마음은 요리하는 사람의 마음인가 보다. 데치는 두부가 식을까 물에서 건져내지 않고 냄비 째로 뚜껑을 닫고 기다린다. 빠르게 채식 만두도 구워 냈는데 그가 오기까지 아직 조금 남았다. 국을 한 번 더 끓일까, 두루치기를 한 번 더 볶을까 생각한다. 밥을 푸고 수저를 식탁에 가지런히 올려놓는다. 군만두에 꼭 간장이 있어야 하는 그를 위해 간장에 식초, 고춧가루를 넣어 만두를 찍어 먹을 간장도 만들었다. 또 뭐를 해야 하나... 싶을 때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쁘게 그에게 인사를 한 뒤 빨리 손 씻고 밥 먹자고 재촉을 했다. 만두는 이미 다 식었고 국도 미지근한 정도가 되었다. 나도 요리하느라 고픈 배를 움켜쥐었기에 그가 조금 빨리 식탁에 앉았으면 했다. 상을 차릴 동안 그는 정장을 벗고 넥타이를 풀러 옷걸이에 예쁘게 걸어 놓고 손과 발을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다 차려진 음식을 두고 그를 기다리는데 조금 서글퍼졌다. 엄마가 저녁을 차리며 아빠한테 전화해서 어디냐고 물어보라던 이유가 이거구나. 이렇게 나도 누군가의 저녁을 차리며 그를 기다리게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저녁을 먹고 그가 샤워하는 동안 어질러져 있는 설거지를 시작했다. 보통 요리는 내가 하고 뒷정리는 그가 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잘 시간이 되고 만다. 그냥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거지, 하며 설거지를 시작했다. 씻고 나온 그가 저녁 차려줘서 고맙다고, 설거지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민망한 마음에 응 하고 짧게 대답했다. 그가 나와 로션을 바르고 고양이들과 놀아 줄 동안 나는 조금만 더 읽으면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분량이 남은 책을 읽었다. 책을 읽기 시작하면 그 내용에 골몰하느라 그가 하는 말이나 묻는 말에 대답을 못하곤 한다. 눈은 문장을 좇아 내려가고 귀는 모든 소리를 백색소음으로 인식해 머리에 입력되지 않아 그렇다. 책을 읽는 나를 보고 그는 노트북을 켜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끼고 하기 때문에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키보드 자판과 마우스 클릭 소리가 요란하게 귀가를 울린다. 나는 그새 목표한 분량을 다 읽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려 침대로 들어간다. 휴대폰으로 뉴스나 SNS를 들여다보며 모로 누워있는 내 곁에 짧은 게임을 하고 온 그가 눕는다. 빤히 내 얼굴을 들여다보던 그가 장난스레 내 휴대폰을 뒤집어 버렸다. 자기를 안봐주냐는 투로 한 행동이었다. 그래서 나도 농담처럼 투정을 부렸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그렇게 우리의 다툼은 불시에,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부분에서 시작되었다. 신혼부부나 오래 사귄 연인이 아무것도 아닌 이유로 싸우게 되면 어느새 싸움의 원인은 없고 상처만 남았다는 말이 이런 거였다. 누구라도 잘못했으니 싸움이 된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어리석었다. 나는 장난처럼 저 말을 던졌지만 그는 내가 짜증을 내었다고 생각했던거다. 그래도 그는 나를 토닥이며 타이르듯 말했다. 요즘 짜증이 는 것 같다고. 그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 수 없어 되물었다.
"내가 짜증이 늘었어?"
"요즘 불쑥불쑥 짜증 내잖아."
"무슨 말이야 갑자기? 내가 언제 짜증 냈어? 나 방금은 장난으로 말한 건데?"
아까 설거지를 하고 헹궈 둔 맥주병을 신발장 끄트머리에 올려놨었는데 쓰레기를 버리던 그가 맥주병을 손으로 쳐서 맥주병이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졌었다. 다행히 깨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나에게 이걸 왜 여기 다 뒀냐며 말했고 나는 그에게 방금과 똑같은 말을 했었다. 내 잘못이라는 거냐고. 그때 아마 그의 마음이 조금 상했던 모양이다.
장난으로 시작한 말들을 일상의 피로로 예민해진 우리가 뾰족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말을 이어 나갔다.
"나는 일 마치고 가장 빨리 올 수 있는 시간에 온 거야. 근데도 너는 빨리 손 씻어라, 빨리 먹자고 짜증스럽게 재촉했던 게 조금 화가 났었어. 아마도 내가 맥주병을 그렇게 올려뒀으면 너도 똑같은 말을 했을 것 같은데 나한테 내 잘못이냐고 날카롭게 말하는 네가 조금 밉더라고. 그래서 짜증이 늘었다고 한 거야. 내가 미안해."
나는 그 말을 잠자코 들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봐도 일상의 나는 조금 날카롭고 딱딱하다. 말수도 줄어들고 모든 시간을 통제하려고 하기에 그가 빠르게 행동하지 않는 것에 날 선 말이 나가기도 한다. 그런 말들을 꺼낼 때면 바로 아차 싶다. 내가 또 뾰족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구나, 상처가 될 수 있겠구나. 하지만 여간해서 그는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럴 땐 되려 나를 더 안아주고 좀 더 다정히 대해주려 한다. 그의 잘못도 아니고, 나의 잘못도 아니다. 그 생각이 머리에 스치자마자 울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서 깊은 호흡을 했다. 다툼이 시작되었다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은 상대를 나쁜 사람으로 만듦과 동시에 해결책은 저멀리 날아가버리는, 아주 하수의 태도이기 때문이다. 씁쓸 후 후, 호흡을 가다듬다가 천천히 말했다.
"퇴근하고 나 한 번 앉지도 못했어. 청소하고 요리하느라 계속 서 있는데 나는 얼마나 배고픈 줄 알아? 너 언제 오나 계속 시계 보고 음식 식을까 봐 불에서 내려놓질 못했어. 오는 시간에 딱 맞춰서 따뜻한 밥 주고 싶어서. 그냥 밥을 사 먹으면 편할 걸 말이야. 엄마가 예전에 아빠를 그렇게 기다리던 게 꼭 나 같아서 조금 서글프기도 했어. 근데 이건 네 잘못도 아니고 내 잘못도 아니야. 우리가 함께 사는 게 처음이라 그런 거야. 우리도 같이 있는 게 처음이니까..."
우리가 처음이라 그렇다는 말을 하자 목구멍이 매워졌다. 눈물이 울컥 쏟아져 내렸다. 코가 꽉 막히고 숨이 잘 안 쉬어져서 크으응 하고 긴 숨을 코로 들이 마시길 반복했다. 그리고 또 울었다. 울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나도 너한테 많이 해주고 싶어서 그런 거야. 네가 멀리 출퇴근하느라 고생하는 거 아니까 조금이라도 쉬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는 마음에 재촉하게 되고 그러다 짜증이 묻어 나왔나 봐. 미안해. 근데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어. 그냥 우리가 처음이라 그래..."
난생처음으로 그와 침대에 누워 같이 엉엉 울었다. 해주고 싶은 건 많은데,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은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에게 맞춰야 하는 것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이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모자란 것이 많아서, 생소해서, 매일이 힘들어서 생채기가 나나 보다.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지만 가끔씩 어려운 시간이 몰려 오기도 한다. 매일이 좋은 날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매일이 좋은 날이기를 바라는 우리는 함께이기 위해 늘 노력해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어 무작정 함께 살아보길 택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할 일이다. 함께니까 좋은 것들이 99가지나 되지만 단 한 가지만으로 이렇게 서럽고 슬픈 눈물이 나오는 걸 보면 많이 사랑해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