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순기 - epi. 7
살을 에는 추위가 연일 이어지고 온 동네는 꽁꽁 얼어붙었다. 길바닥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리고 횅댕그렁한 나뭇가지가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휘날린다. 순기는 내복을 껴입는 것도 모자라 안쪽에 인조털이 붙은 고무장화까지 신고 길을 나섰다. 손에 든 보따리에는 펄펄 끓는 미역국을 담은 보온병, 미자가 좋아하는 계란 소고기장조림, 고들빼기김치, 그리고 몇 달 전 담은 김장 김치를 가득 포개어 꾹 눌러 담은 작은 플라스틱 통을 쌌다. 얼어붙은 길이 여간 미끄러운 것이 아니다. 식당에서 나와 종종걸음을 걸으며 버스에 올라탄 순기가 동전 몇 닢을 요금통에 넣으니 철통에 부딪히는 동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적막한 오전의 버스 안을 깨운다. 이어 동전을 거둬드리는 기계음이 난다. 버스 창가에 앉은 순기는 영하의 날씨가 무색할만치 따뜻하게 쏟아지는 볕을 느낀다. 발치에 내려놓은 보따리에서 김치 국물이 새지 않게 발가락에 힘을 주었다.
미자는 몇 달 전 딸을 낳았다. 이름은 윤미라고 지었단다. 까마득한 언덕배기에 위치한 미자네의 초입은 끝이 보이지 않는 시멘트 계단부터다. 한 발 한 발 조심히 계단을 올랐다. 순기의 숨이 무섭게 턱 끝까지 차올랐다. 온통 껴입은 옷가지 때문에 순기의 몸 안에서는 땀이 뻘뻘 났다. 차가운 공기와 순기 몸의 열기가 만나 순기 머리 위에서 하얀 김이 났다. 미자가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길을 오갔을 생각을 하니 순기의 가슴께가 미어졌다.
미자는 결국 정호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순기는 미자를 말리기 위해 모든 것을 해봤다. 미자의 손모가지를 잡고 산부인과에 끌고 가 애를 떼자며 미자와 실랑이를 벌이다 그만 병원 나무 바닥에 넘어져 한참을 펑펑 울었다. 병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순기와 미자를 번갈아보며 수군댔고 어떤 이는 소리가 나게 혀를 찼다. 또 어떤 날엔 그놈이랑 결혼하면 당장 호적에서 파버릴 거라며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부드러운 말씨로 박 씨 아저씨네 변호사 아들과 만나보기라도 하라며 선 자리를 주선한 날도 있었다. 가슴이 답답해 터질 것 같은 날에는 노 씨네 단칸방 앞에서 정호의 이름을 고래고래 외치며 욕하다 눈에 실 핏줄이 터졌다. 네놈이 내 딸을 훔쳐 가게 둘 것 같냐, 내 금지옥엽을 어디 그 더러운 손으로 만질 생각을 하냐며 순기는 목청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노 씨 부부가 순기를 말렸다. 어떤 방법도 통하는 게 없었다.
이제 다 예전 일이다. 미자와 정호는 식도 안 올린 채 순기의 집에서 조금 떨어진 달동네에 방을 얻고 살기 시작했다. 미자가 정호와 살림을 합치기 위해 짐을 꾸려 나갈 때 순기는 미자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선옥이 순기의 어깨를 잡고 큰언니 가는 길 바래다 주자며 애원했지만 애궂은 선옥에게 윽박만 질렀다. 미자에게 더 이상 자신의 사랑을, 마음 가득 담긴 미자를 향한 연민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미자가 떠나가기를 뒤통수로 배웅했다. 목구멍 아래 깊은 곳에서 쓴맛이 올라오고 코 주변부는 눅진한 콧물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눈가는 머리가 아플 만큼 뜨거웠지만 순기는 울지 않았다.
버스 차장 밖을 멍하게 바라보던 순기는 자신의 숨으로 뽀얗게 김이 서려 보이지 않는 유리 창문을 손바닥으로 쓸어 닦았다. 순기는 아직도 정호를 미워한다. 딸만은 용서해도 정호 그놈은 용서할 수가 없었다. 몇 달 전, 미자가 아기를 낳았다고 정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전화를 받고도 병원에 가볼 수도, 얼마나 힘들었냐며 미자의 얼굴을 쓰다듬어 줄 수도 없어 순기는 가슴이 너무 아팠다. 정호는 한참을 말없이 수화기만 붙들고 있다 얘기를 꺼냈다.
"미자가 어머님을 많이 보고 싶어 했어요. 진통을 꽤 오래 했는데 울면서 엄마 보고 싶다고... 그래서 말인데요, 어머님. 제가 몇 달 있다가 집을 비워야 할 것 같은데, 저희 집에 오셔서 미자랑 아기 좀 돌봐주실 수 있을까요? 염치없다는 건 알지만... 부탁드릴 분이 어머님밖에 없어서..."
순기의 예상이 딱 맞았다. 정호에게 시집간 미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안 봐도 뻔했다. 순기는 정호의 얘기를 듣는 순간 속에서 천 불이 났다. 수화기를 손으로 하도 꼭 붙들어 손가락 가죽이 뼈 모양에 따라 하얗게 변했다. 순기는 지금 당장 미자가 있는 병원으로 찾아가 미자와 아기 모두 집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어떻게 사는지 안 봐도 눈에 훤히 보이니까. 뭘 믿고 그놈이랑 결혼했는지는 몰라도 이제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 하지만 순기 입에서는 다른 말이 쏟아졌다.
"당신, 어디서 어머님이래! 난 당신 같은 사위 둔 적 없네. 그리고 미자는 이 집을 나간 이후로 내 딸이 아니야. 미자가 애 낳았다고 내가 얼싸안고 춤이라도 추길 원하는 거요? 아니면 내 딸내미랑 핏덩이 책임 못 지니까 이제사 나한테 떠미는 건가? 난 이제 몰라. 네놈이 훔친 장물은 네놈이 책임져야지!"
화살 같은 말을 속사포처럼 쏟아놓은 순기는 수화기를 거세게 내려놓고 밀려오는 슬픔을 감당하기 어려워 호흡이 가팔라졌다. 자신이 이런 말 밖에 할 줄 몰라서, 용서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게 너무너무 화가 났다.
'엄마가 틀렸다는 것을 보여줘라. 내가 너무 어리석고 멍청해서 정말 좋은 남자를 골라 혼인한 너를 축복해주기는커녕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남겼다고 나를 원망해 줘라. 단란하고 귀한 가정을 꾸려서 엄마가 틀리고 네가 맞았다고 말해주렴. 미자, 나의 첫사랑아. 네가 나에게 왔을 때 내가 가졌던 기쁨과 행복을 너도 고스란히 느끼길 바란다. 이제부터는 정말 단단히 살아가야 할거야. 아가와 너에게 세상이 험한 짓 못하도록 단단하게 바로서야 한다. 너는 너의 아가에게 좋은 엄마가 되주렴. 나는 엄마가 되어 본 게 처음이라 너를 많이도 힘들게 했던 것 같다. 미안하다, 아가. 이제 더 좋은 날들만을 기다리며 살아라.'
반 년 만에 만난 미자는 원래도 큰 눈이 더 도드라져 개구리 같은 얼굴이었다. 얼굴살은 쪽 빠져 광대 뼈가 기이하게 보일 만큼 볼록 솟아있다. 순기는 미자가 정호 이야기를 꺼낸지 근 일 년만에 제대로 미자의 얼굴을 바라보게 되었다. 기름지고 윤이 나던 까만 머리는 푸석푸석한 지푸라기를 모아놓은 짚단 같았고 그마저도 듬성듬성 비어 있는 몰골이었다. 순기를 보자마자 미자의 눈에 눈물이 가득 차 올랐다. 젖먹이를 끌어안은 폼이 영 어설퍼 순기가 그 핏덩이를 받아안고 미자에게 말했다.
"괜찮아. 엄마가 왔잖아. 이제 괜찮다, 미자야. 많이 힘들었지? 괜찮아. 이제 다 괜찮아."
펑펑 우는 미자의 등을 차갑고 주름지고 두툼한 손이 나릿나릿 토닥였다. 미자의 등은 전에 없이 말라 갈비뼈와 척추뼈 마디마디가 다 느껴질 정도였다. 미자에게 그간의 일들을 묻지 않았다. 미자의 울음이 진정되자 순기는 보따리를 풀었다. 작은 간이 부엌이 딸린 그 집은 여섯 평이 겨우 될 정도로 작은 집이었다. 순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미자를 책망하지도, 측은해 여기지도 않았다. 그냥 찬장을 열었다. 작은 프라이팬 하나와 냄비 하나. 그 냄비에 왼손이 저릿해질 정도로 꽉 쥐고 온, 오라이식당에서 펄펄 끓인 미역국을 덜었다.
"우리 딸들 아기 낳으면 꼭 내 손으로 미역국 끓여주겠다고 했는데, 이제야 해보네."
미자네 오기 전 순기는 새벽부터 오라이식당에 가서 분주히 몸을 움직였다. 순기만 들어갈 정도로 셔터를 반쯤 올리고 식당에 불을 켰더니 영업을 하는 줄 알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있었다. 식당을 찾아준 손님들을 되돌려 보내는 일은 순기에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오늘만은 손님도, 아니 하느님도 허락하시리라 믿었다.
"우리 애기 보러 가야 해서 오늘은 장사 못할 것 같어." 순기는 출근하다 들른 한일 유통 아가씨를 보며 말했다.
"드디어 미자 씨 보러 가시는 거예요, 사장님?" 어느새 순기를 이모처럼 잘 따르는 한일 유통 아가씨가 상기된 목소리로 물었다.
"가봐야지 않것어? 이제 내 마음이 쬐끔 넉넉해졌나벼. 오늘은 꼭 보고 와야겄어. 우리 아가씨 내일은 내가 맛있는 콩비지찌개 해줄게, 내일 꼭 와. 알겄지?"
"사장님, 진짜 잘 생각하셨어요. 미자씨, 보고싶네. 그럼 내일 밥 먹으러 올게요!"
회사 유니폼을 입은 그 아가씨를 돌려보내며 미자도 저렇게 평범히 회사를 다녔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했지만 순기는 이내 마음을 잡았다. 미자의 삶을 응원해 주러 가는 날이니까 잡생각은 안 하는 게 좋다. 손님이 보내준 기장 미역을 물에 불려 꼭 짜고 들기름을 두른 냄비에 연한 초록빛이 돌 때까지 잠깐 볶아주었다. 질좋은 미역으로 미역국을 끓이면 몇 번을 푹 끓여도 미역이 불지 않고 탱글탱글해 오래 먹을 수 있다. 핏기를 빼고 밑간 한 좋은 소고기 양지 살을 넉넉히 넣어 소고기의 표면이 갈색빛이 돌 때까지 잘 볶으면 미역과 소고기에서 진하고 뽀얀 국물이 나온다. 그때 다진 마늘 한 숟가락을 넣어 휘리릭 볶아주고 물을 넣어 팔팔 끓이기만 하면 된다.
미자가 집을 떠난다고 해서, 돌멩이 총각에게 시집을 간다고 해서 미자를 다신 안 볼 생각은 아니었다. 어떻게 내 배 아파 낳은 딸을 안 보고 살 수 있겠는가. 순기의 마음이 미자를 독립적 존재로 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 것이다. 자신의 딸이 아닌 여자 장미자, 누군가의 아내 장미자, 한 아이의 엄마 장미자로 말이다. 그렇게 꼬박 일 년 순기는 딸을 그리워했다. 미역국을 다시 데우며 갓난 아기를 안고 있는 미자를 보았다. 기어이 네가 엄마가 되었구나.
미자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밥숟가락을 들려주었다. 애 낳고 미역국은 먹었는지, 남편은 어떤지, 젖몸살은 없는지 순기는 미자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쑥 꺼진 초췌한 낯빛으로 미역국을 떠먹는 미자를 보며 질문을 삼켰다.
"천천히 꼭꼭 씹어 삼켜야 해. 너 좋아하는 소고기 넣은 계란장조림이랑 꼬들빼기도 많이 가져왔으니까 입맛 없을 때 물에 밥 말아서라도 한 숟갈 꼭 먹고, 응? 갓난쟁이 키우는데 얼마나 힘이 많이 드냐. 엄마가 건강해야 아가도 쑥쑥 건강하게 큰다, 미자야."
"엄마, 너무 맛있다. 진짜 맛있다... 엄마 밥이 얼마나 먹고 싶던지... 한 번은 윤미한테 젖 물린 채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엄마가 나와서 밥을 해주는 거야. 엄마 등에는 윤미가 포대기에 싸여서 새근새근 자고 있고... 그러고 깼는데 눈물이 막 나서... 엄마 보고 싶고.. 그랬어. 헤헤"
말도 채 끝내지 못하고 또 울컥 올라온 감정을 들키지 않으려 미자는 씩씩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미자의 남편, 정호는 정말 가끔 큰돈을 미자에게 주고는 몇 달씩 집을 비웠다. 정호와 결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던 순진한 아가씨 미자는 이제야 순기의 말들을 조금씩 이해했다. 딸을 낳고 뼈마디가 닳았고 머리카락 한 움큼이 빠졌다. 몇 시간마다 빼액빼액 소리 지르며 우는 아기를 퀭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베개로 아이의 얼굴을 내리눌러 잠잠하게 만들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다. 가끔은 귓전에 울리는 아기의 울음소리가 아무런 소란으로 느껴지지 않아 아기가 몇 시간 동안 울다 제풀에 지치게 내버려 둔 적도 많다. 미자는 어떻게 순기가 이런 일들을 감당해냈을까 생각했다. 아이 넷을 키웠다. 입구멍 네 개를 끼니마다 채우고 빨래며 집안일이며, 아직 아기였던 자신을 둘러매고 시장에서 나물을 팔던 순기가 미자는 숭고하게까지 느껴졌다. 평생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순기가 며칠 전 정호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 딸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자신이 봐야겠다며 집을 알려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오늘 그녀의 초라한 단칸방에 엄마가 와 훈훈할 정도의 온기가 스민다. 밥숟가락을 들고 있는 자신의 마른 손목을 내려다 보다 앞을 올려 보니 순기가 윤미를 안고 아기의 고사리 같은 손가락을 만지고 있다. 매일같이 울고 떼쓰던 윤미가 순기의 품에서 통잠을 잔다. 미자도 순기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감는다. 보고 있어도 그리운 엄마의 냄새가 자신의 몸에 조금 더 벨 수 있게 자세를 고쳐 잡는다.
"엄마, 고마워. 내가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