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근무를 마치고 부랴부랴 반차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예정에 없던 휴가 소진이지만 이날을 기다려 왔으니 반차 정도는 가뿐히 써 버릴 수 있다. 며칠 동안 전전긍긍하며 휴대전화를 들여다봤다. 내 생애 이렇게 비싼 가격의 가구를 사는 게 처음이라 과연 사도 될까 하고 고민만 하다가 이미 몇 주를 보냈다. 노란 바탕에 파란색의 글씨가 간결하게 띄어져 있는 로고를 눌렀다. 최근 검색 목록에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내 드림 소파. 푹신한 쿠션이 등받이와 팔걸이, 앉는 부분까지 빵빵하게 채워져 모든 모서리가 동그란 이 소파는 아홉 살의 내가 어른이 되면 꼭 사리라 다짐했던 가구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는 매일 '김 선생 피아노 학원'에 갔다. 일반 가정집 빌라를 개조해 학원으로 사용하던 작은 피아노 학원은 방 하나에 가벽을 세우고 한 방을 여러 개의 분리된 방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곳에는 조그만 방 하나를 가득 채우는 클래식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나는 매일 하농이라든지, 체르니 100 같은 피아노 입문서를 지루하기 짝이 없게 연습해야만 했다. 한 곡을 다 칠 때마다 손바닥만 한 연습 공책에 빈 동그라미 하나씩 칠하며 얼마나 연습했는지를 기록했는데, 보통 두세 번 정도 덜 치고 열 번 꽉 채워 쳤다고 낯빛 하나 바뀌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유형의 어린이였다. 그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은 김 선생님이었다. 김 선생님은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어 시원시원한 체구에 턱까지 닿는 짧은 머리를 했다. 밝은 갈색의 짧은 머리는 언제나 완벽히 세팅되어 빵빵한 볼륨감을 자랑했다. 김 선생님의 눈꺼풀에는 살이 없어 자연스레 쌍꺼풀이 지어져 있었다. 속눈썹도 길고 눈동자 색도 밝은 갈색이라 선생님이 혹시 외국인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도 있다. 김 선생님이 작은 학원 안을 분주히 돌아다니며 한 명씩 진도를 체크하고 레슨을 해주면 나는 가만히 피아노 앞에 앉아 선생님이 내 쪽으로 오고 있는지 방 안에서 소리를 들었다. 선생님에게는 항상 달콤한 향수 냄새가 났다. 긴 플레어스커트를 자주 입던 선생님이 움직이면 작은 바람이 일었고 그 움직임으로 선생님의 향수 냄새는 이리저리 이동했다.
매일 아이들로 가득하던 그 피아노 학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방은 단연 선생님의 방이었다. 김 선생님의 방은 다른 방보다 훨씬 넓었고 벽 한 쪽에 하얀 고급 클래식 피아노가 놓여 있었다. 미끈한 철제 다리 위에 네모난 유리 상판이 올려진 선생님의 업무 테이블이 방 한편을 채웠는데, 그 테이블 곁에는 하얗고 푹신한 이인용 소파가 놓여 있었다. 피아노 학원 아이들은 그 이인용 소파에 서너 명씩 끼여 앉기를 좋아했다. 피아노 연습을 다하고 이론 책을 풀려면 의자가 단단하고 높이가 맞는 책상에서 하는 것이 가장 편한데도, 너무 푹신해 글씨를 쓰기에는 허리가 아픈 그 소파를 그렇게도 원했다. 김 선생님은 아이들이 많이 없는 시간에 가끔 그 소파에서 업무를 봤다. 김 선생님이 기다란 치마폭을 소파에 잘 펴놓고 볼펜을 쥔 기다란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는 장면은 마치 영화 같았다. 이미 많은 아이들이 앉고 뛰고 누워서 움푹 가라앉아 버린 그 소파가 그때부터 내 기억 속에 깊이 자리했다. 그 당시 우리 집에는 소파는커녕 좌식 방석도 없었다. 사실 거실이라 부를만한 공간도 없는 아주 오래된 옛날 집이어서 미끄러운 비닐장판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생일파티를 했다. 피아노 학원에 가는 날 운이 좋으면 앉아볼 수 있었던 푹신푹신하고 하얗고 둥그런 그 소파를 나는 기다렸다.
엄마의 품에서 나와 혼자 지방에서 지내야 했던 시간들이 많아지자 내가 가장 먼저 알아본 것마저 소파였다. 학교 근처 다섯 평 남짓한, 흡사 고시원 같은 오피스텔에 살 때 처음으로 내 소파를 샀다. 사실 소파라고 하기 뭐 한 일인용 좌식 의자이지만, 180도까지 펼쳐지고 각도 조정까지 할 수 있어 매우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좌식으로 앉는 것은 생각보다 편하지 않았다. 오래 앉아있다 보면 접은 다리가 저리고 허리에 무리가 와서 오래 쓰지 못하고 버렸다. 대구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는 중고거래로 커다랗고 낡고 푹신한 소파를 구했다. 소파 육만 원, 용달 오만 원에 다른 동네의 아파트로 그 소파를 모시러 갔다. 연인에게 부탁해 함께 그 소파를 가지고 오자고 했다. 지도로 주소를 찍어보니 대구 어느 부자 동네 아파트였다. 쭈뼛쭈뼛 아파트로 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집으로 올라가니, 세상에, 현관이 우리 집 거실보다 넓은 걸 보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그 집에 사시는 - 소파를 중고거래하시는 - 분은 귀찮은 듯 우리에게 인사도 없이 용달 아저씨에게 손짓으로 소파를 가져가라고 했다. 그 태도에 우리도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인데 왜 이렇게 궁색해져야 하는지 왠지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건 소파의 크기였다. 우리는 짐짓 놀랐다. 분명 이인용이라 했는데, 실제로는 삼인도 충분히 앉을 수 있는 크기의 고급 소파였다. 일단 산다고 했으니 집으로 가져가야 하는데, 그날 용달 아저씨는 왠지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상태였다. 이렇게 큰 소파를 어떻게 혼자 가져가냐며 우리에게 마구 짜증을 부렸는데, 내 연인은 젊고 건장한 성인 남성이며 돕겠다고 헸는데도 아저씨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렇게 용달 트럭은 우리를 태우지 않고 우리 집으로 떠나버렸다. 그날 내 연인은 아저씨와 그 큰 소파를 어깨에 지고 4층 빌라 계단을 올랐다. 우여곡절이 많았던 그 낡은 소파에 앉아 그래도 행복하다며 연인과 함께 웃었다. 본격적으로 카우치 포테이토가 되어보자며 피자를 시키고 나란히 소파에 앉아 캔 맥주로 건배를 하니 가져올 때의 고생도 다 잊어버렸다. 그 낡은 소파 위에서 고양이들과 망망대해에 떠있는 나룻배처럼 옹기종기 붙어있었던 적도, 스트레스에 엉엉 울며 넋이 나간 적도 있었다. 참 든든하게 내 몸을 받쳐주던 그 낡은 소파는 서울로 이사 오기 전 다시 중고거래로 이만 원 오천 원에 팔았다. 나에게 그랬던 것처럼 어디에서도 위로가 되는 소파가 되길 빌며 그 낡은 소파를 보내기 전 청소를 하고 모서리를 손끝으로 쓸었다.
이제 나는 새로운 소파 위에 앉아있다. 더없이 푹신하고 넓고 아늑한 이 소파는 원래부터 우리 집에 있던 가구처럼 딱 들어맞는다. 오리털 쿠션 두어 개도 얹어주니 화사하다. 한겨울 추위에 우리 집 얇은 유리창에서 한기가 스며나온다. 엄마가 만들어준 두꺼운 광목 커튼을 달고 그 앞에 라디에이터를 틀어놔도 한파를 막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소파에 전기장판을 깔았다. 앉으면 뜨끈뜨끈한 열기가 엉덩이로 전해지고 스르륵 몸이 뉘여져 어느새 소파와 완벽히 한 몸이 되어 누워있는 나를 깨닫게 된다. 그렇게 소파 위에서 책을 읽고 그러다 졸리면 잠깐 눈도 붙이며 겨울을 이겨내고 있다. 이렇게 한 겨울이 되기 전 소파를 사서 정말 다행이다. 며칠 전에는 작은 소파 테이블도 중고로 구매했다. 이제 우리 집 거실은 완벽하다. 테이블에 앉아 잔업을 하던 나의 연인은 소파에 누워 책을 읽다 잠에 들고 다시 꿈틀꿈틀 깨서 책을 읽는 내 모습을 보고 웃는다. 나의 치유는 소파 위에서 이루어진다.
캐럴을 들으며 또 소파 위에서 뒤척이는 시간에 소파가 어쩌면 나의 사치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하던 시절부터 부득부득 처지에 맞는 소파를 사 온 과거의 내가 조금 웃기다. 또 한편으로 지금의 내가 대견하다. 따뜻한 소파 위에서 귤을 까먹고 고양이들과 낮잠을 자고 책을 읽으면 어쩐지 이렇게 연말을 보내는 내가 멋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 해를 보내는 지금, 푹신한 소파에서 행복한 순간을 쌓아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