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고은
#26. 순기 - epi. 8
노래자랑에 나간다고 오전 내내 허리를 굽히고 쪽파를 다듬었더니 순기의 온몸이 찌뿌둥 하다. 팔과 어깨를 요리조리 흔들어도 안되길래 문화센터로 가던 발을 멈추고 잠깐 섰다. 그 자리에서 순기는 두 손으로 허리를 잡고 머리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이 기세 좋게 높아지고 목화솜을 잘 흐트러뜨린 것처럼 구름이 옅게 깔려 있는 맑은 가을 날이다. 30분 뒤에 문화센터에서 노래자랑 예선이 있다. 고작 10분 거리에 있는 문화센터이지만 혹시나 늦을까 싶어 순기는 조금 일찍 길을 나섰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떨리는 마음도 진정될 것이다. 매번 부를 때마다 막혀 버리는 구절을 주문처럼 뇌었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그 님이 다시 온다...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그 님이 다시 온다..." 그러다 순기는 한숨을 폭 내뱉었다.
"그 님이 다시 오면 얼~마나 좋겠수~ 내 님은 이미 저 멀리 가버린 것을..."
혼잣말을 하며 며칠 전에 꿈에 나온 영주를 그려본다. 어쩌다 그렇게 쉽게 가버렸을까, 수십 년을 생각했지만 아직도 답을 못 내렸다. 어떤 무당은 순기의 기가 세서 영주의 팔자를 잡아먹은 것이라고 했다. 서방 잡아먹는 드센 팔자라 애들은 서방 없이도 잘 키우겠다고 했는데, 그 무당의 입을 찢어놓고 오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어머, 오라이 아줌마! 문화센터 가는 거야?"
문화센터로 가던 오르막길에서 진화 엄마가 순기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건네었다. 진화 엄마는 순기의 문화센터 라이벌이다. 라이벌? 아니, 라이벌이 아니라 혼자 순기를 라이벌로 여기는 여편네다. 어쩜 그렇게 순기를 따라 하는지 노래교실에서 민요를 배우다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지면 꼭 진화 엄마가 순기를 흘금흘금 쳐다보고 있다. 지난번에는 좋은 엿기름이 생겨 밤새 감주를 끓여서 문화센터에 가져간 적이 있었다. 다들 감주가 어쩌면 이렇게 맛이 좋냐며 칭찬 일색이었는데, 꼭 그 여편네만 눈엣가시처럼 얄미운 행동을 했다. 순기가 만든 감주 속 밥알이 너무 퍼져있다는 둥, 엿기름을 이렇게 내는 게 아니라는 둥, 순기는 진화 엄마의 얇고 주름진 입술을 겨울이불 동여매듯 두꺼운 명주실로 단단히 꿰매버리고 싶은 마음이 불쑥 올라왔다. 순기가 새 옷이라도 입고 오는 날이면 눈을 가늘게 뜨고 순기의 옷을 뜯어보며 이것저것 물어보았는데 그러고 며칠 뒤에 꼭 똑같은 옷이나 비슷한 옷을 입고 와 문화센터를 누비며 새 옷 자랑을 했다. 어찌나 꼴 보기가 싫은지 식당에서 칼질하다 속에서 열불이나 집어 던져버린 적도 많았다. 좋은 날에 하필 진화 엄마를 마주치다니, 순기의 기분이 팍 상해버렸다.
"오늘 노래자랑 예선 날이잖어. 진화 엄마는 참가 안 하는겨?"
"그래서 이렇게 화장도 하고 비단옷도 입었구먼 그래. 나는 오전 반이었잖아. 진즉에 끝났지. 아이고~ 안 그래도 우리 딸이랑 아들이 나 노래자랑 나간다고 꽃다발이랑 한가득 사 와 가지고 집에 가지고 가느라 혼~났어. 손녀딸이 와서는 할머니 목소리는 꾀꼬리 같다고 어찌나 종알종알 대는지 아주 정신이 없었다니까. 아!하하하하하~"
진화 엄마의 말의 절반은 순뻥이다. 딸이랑 아들이 꽃다발을 사 오기는커녕 저 여편네가 노래자랑 나가는지도 몰랐을 거라고 순기는 속으로 실소했다. 문화센터의 인원 제한으로 인해 예선전은 오전 반, 오후 반으로 나누어졌다. 식당일 때문에 순기는 꼼짝없이 오후 반을 신청했다. 진화 엄마가 오전 반이었다니 오후로 신청하길 천만다행이다. 순기는 진화 엄마와 함께 곧장 노래자랑 참가자 대기실로 갔다. 순기의 참가번호는 18번이다. 진화 엄마는 이미 예전에 순기를 등지고 아줌마들이 수다 떠는 다과방으로 갔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요란한 저 여편네가 있으면 제대로 할 것도 못하고 나올게 뻔하니까. 대기실에서 순번을 기다리는 참가자 중에는 손바닥만 한 원피스를 예쁘게 차려입고 자기 엄마를 따라 입술을 우- 하고 내밀고 빨간 연지를 바르는 꼬맹이들도 있었지만 대게 순기와 비슷한 나이대의 중년 여성들이었다. 다들 생활 한복이나 비단 한복을 입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 하나로 쪽을 지었는데 순기가 아무리 아끼고 아껴온 꽃분홍색의 잠바라도 그들의 화려함을 넘볼 수가 없었다. 예선을 통과하면 꼭 한복을 입고 본선 무대에 나가겠다고 순기는 다짐했다.
순기의 나이쯤 되면 인생에 떨릴 일이 많이 없다. 순기가 지나온 시간이 다른 이들보다 거칠거칠 해서인지는 몰라도 순기는 많은 면에서 의연하게 행동했다.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야 하는 지금도 하나도 떨릴 게 없다는 양 굴었다. 이깟 노래자랑이 영주가 황망히 세상을 떠났을 때처럼, 미자가 괴상한 놈을 만나 집을 나갔을 때처럼 순기의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지는 않았다. 폭풍 같은 삶 속에서도 순기는 굳세게 행동하려 노력했다. 마음이 두근거릴 때마다 순기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하늘 네놈이 나를 부러뜨리려 하는구나. 내가 망가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구나. 네 빌어먹을 바람대로 내가 꺾일 것 같냐. 나 김순기다. 김순기! 구부러져도 깨지지는 않는다, 이 고약한 하늘아!'
그러다 보면 눈물도 그치고 손도 안 떨리고 마음도 진정이 되었다. 하지만 굳센 척, 의연한 척하는 것이 정말 순기가 굳세거나 의연하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차라리 좀 무감각한 사람이었다면 좋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던 때가 많았다. 순기 자신이 눈보라에도 무감각한 사람이었다면, 삶의 희비에 크게 기뻐하고 슬퍼하지 않았다면 인생이 조금 덜 힘들지 않았을까. 너무 많은 것에 과한 감정을 품은 것이 탈이 난 것이 아닐까.
"엄마!"
그때 대기실 문이 빼꼼 열리더니 선옥과 기선이 손을 흔들며 순기 곁에 와 앉았다.
"와~ 할머니 잘 찾았다, 기선아! 여기 오르막이 왜 이렇게 심해?" 선옥은 기선을 들어 올려 무릎에 앉혔다.
"아이고~ 기선이 이놈의 기지배! 우리 똥강아지! 할미 여기 있는 줄 어찌 알고 찾아왔어~ 오구구구 우리 이쁜 강아지!"
"엄마 아직 시작 안 했지? 어후 다행이다. 우리 문화센터 앞에 언덕 뛰어 올라오느라고 욕봤어. 엄마 떨지 말라고 응원하러 왔어. 잘했지?"
"예선 날은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제시간에 찾아왔댜 그려. 기선이 안고 오느라고 고생했어, 우리 막내. 나는 열여덟 번째라 이제 다다음 순번이여. 예선은 구경할 수도 없는데 뭐더러 왔어~ 아이고 참말로,"
"내가 와야 엄마가 합격하지! 결과는 다 끝나고 나온다며. 결과 듣고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짠돌이 이서방이 장모님 노래자랑 나간다고 돈 주고 갔다니까 글쎄. 엄마 안 떨려? 왜 내가 떨리지?"
순기는 선옥과 기선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예선쯤은 한 번에 붙는다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순기의 영원한 막내 선옥은 순기에게 늘 이렇게 감동을 주는 아이였다. 사람 마음을 먹먹하게 만드는 재주라도 있는 모양이다. 순기는 기선의 조그만 손을 꼭 붙잡고 있다가 "18번 들어오세요." 하는 목소리가 들리자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일어났다. 그리곤 기선의 말랑한 볼에 뽀뽀를 하고 옷매무새를 단정히 매만지며 소원했다. 선옥이 사준 이 꽃분홍 잠바가 행운을 가져오길. 큼큼, 하고 목을 풀고 순기는 예선장으로 입장했다.
아버지 없는 삶이 차차 익숙해지고 선옥 또한 형제들 중 마지막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해 작은 회사에 경리로 취직했을 무렵, 선옥은 대헌과 만났다. 대헌은 매주 납품을 하기 위해 선옥의 회사에 왔다. 천이 가득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를 이고 온 대헌이 회사 창고에 물건을 차례로 쌓아 놓으면 선옥이 개수를 세고 물건을 확인하는 식이었다. 베이지색 투피스 유니폼을 입은 선옥은 젊고 아름다웠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H라인 스커트에 굽이 낮은 구두를 신고 등허리 중간까지 오는 길고 검은 머리를 가지런히 땋아 일명 디스코 머리를 곧잘 하고 다녔는데, 호리호리한 몸매에 길쭉한 팔다리가 어찌나 예쁜지 연자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선옥을 보며 "선옥이 너는 엄마가 다리 밑에서 주워와서 우리랑 달리 다리도 길고 날씬한 거야, 알아?"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대헌이 납품할 물건을 들고 회사에 오는 날이면 고요한 회사 사무실이 우렁찬 "안녕하심까~"로 꽉 찼다. 시장에서 일하는 대헌은 사무실이 얼마나 조용한 공간인지 몰랐다. 들어설 때부터 큰 동작으로 시선을 끌었는데 수량을 확인하던 선옥에게 대답을 할 때면 더 커지는 목소리에 직원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그런 대헌의 괄괄함이 선옥은 재미있었다. 가끔 부장님이 지나가다 능갈맞은 얼굴을 하며 선옥을 대헌과 엮을 때에는 대헌의 목소리와 동작이 평소보다 훨씬 빨라지고 귀는 뜨거운 것에 데인 양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에 또 선옥은 대헌이 참 투명하고 귀여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자에 대한 생각이 잘못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도 그쯤이었다. "남자라고 모두 구제불능은 아니지 않을까. 세상의 반이나 되는 남자들이 모두 남 등쳐먹으며 기생하진 않겠지." 선옥에게 가장 가까운 남자는 선옥에게 아주 고약했으니까. 것도 빈 껍데기를 가득 부풀려 살기 좋아하는 구제불능의 인간이었으니까. 남자들은 믿을게 못된다 생각했었다.
선옥이 성인이 되고 몇 개월 뒤 순기는 종로 재래시장에 새 오라이식당을 열었다. 오라이식당이 작은 골목을 몇 년간 지킬 때 골목 맛집을 탐방하는 방송에서 취재를 나온 적이 있었는데, 그 방송이 나간 뒤 손님이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좁디좁은 골목은 물론 그 앞 대로변까지 오라이식당에 온 손님들로 줄이 쭈욱 늘어져 있었다.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처음엔 웬 행운인가 싶었다. 뚝배기 한 그릇에 이천오백 원을 받았는데, 하루에 손님 몇 백 명이 오가니 돈이 엄청나게 싸여 갔다. 금고가 꽉 차고 순기의 앞치마 주머니, 고쟁이 주머니, 잠바 주머니 할 것 없이 돈으로 불룩 튀어나올 정도였다. 방송을 탄 지 한 달 만에 순기는 일 년 동안 벌 돈을 다 벌었다. 더불어 한 오 년은 늙은 느낌이었다. 오라이식당을 열 때부터 함께해 주었던 기존 단골손님들이 새로 온 손님들에 밀려 발길을 끊었고 인정 많던 골목 상인들은 순기에게 지청구를 퍼부었다. 오라이식당 때문에 골목이 이 꼴이 났다며, 그 집에 줄 서는 손님들 때문에 쓰레기에 가래침에 담배에 더러워 죽겠다고 했다. 순기는 매일 밤 골목을 구석구석 쓸고 청소했다. 하지만 대박이 터진 오라이식당을 아니꼽게 보는 이들은 곳곳에서 생겨났다. 그렇게 삼 개월을 버티다 식당 문을 닫았다. 순기의 체력도, 몇몇 친한 상인들의 위로로도 버티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게 문 닫은 오라이 식당에 앉아 있는데 퇴근한 선옥이 회사 유니폼을 입고 들어왔다.
"엄마, 딸내미 왔어요~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으며 선옥은 순기의 맞은편에 앉았다.
"딸 왔어? 밥은 먹었고? 에휴.. 오라이식당을 어찌해야 되나 모르겄어. 대박이 나도 문제고 쪽박이 나도 문제다." 순기는 땅이 꺼지게 한숨을 쉬었다.
"엄마, 그래서 말인데, 있잖아. 우리 회사에서 자주 가는 식당이 종로 그 큰 시장 초입에 있는데 몇 달 뒤에 장사를 접는대. 근데 거기 자리가 꽤 좋아. 우리 회사 부장님이 그 가게 사장님이랑 친해서 들었는데, 딸이 외국에서 애를 낳아가지고 가게 접고 해외로 나가야 되나 봐. 엄마가 그 자리에 오라이식당 차리는 건 어때?"
선옥은 눈에서 밝은 빛을 내며 말을 이어갔다. 지금 자리보다는 임대료가 비싸지만 훨씬 넓고 상권도 좋다고 했다. 순기는 어찌 되었건 이 자리에서 오라이식당을 더 이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선옥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영주가 떠나고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이 오라이식당을 두고 가는 것이 참 마음에 걸렸다. 목에 까끌한 모래알이라도 낀 것 같이 불편했다. 순기의 미적미적한 반응에 선옥은 이번 주말에 자기와 함께 종로에 나가보는 게 어떠냐 제안했다.
"엄마 우리 회사 한 번도 본 적 없잖아. 막내딸 어떻게 사람 구실 하나 구경도 하고 우리 맛있는 거도 먹자. 엄마 몇 년 동안 제대로 쉬지도 못했잖아. 응?"
선옥의 명석한 꼬드김에 넘어가 그 주 순기는 종로에 나가 선옥의 회사 건물도 구경하고 선옥이 말한 가게 자리도 둘러보았다. 광화문 앞 커다란 도로도 보고 이순신 장군 동상도 구경했다. 서울이 이렇게나 넓었다니, 이런 걸 여태 모르고 살았다니. 사람 많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순기는 선옥을 놓칠까 손을 꽉 잡았다. 선옥과 함께 청계천 거리를 돌아다니고 길거리 음식도 사 먹었다. 정말 몇 년 만에 순기는 행복을 느꼈다. 선옥은 때때로 순기의 친구였다가 마음 맞는 동반자였다가 어느 때는 불쑥 결단력 있는 언니처럼 행동했다. 종로 재래시장 초입에 위치한 가게 자리는 선옥이 말한 대로 군더더기 없는 목이었다. 주말이나 평일이나 오가는 사람이 많았고 시에서 지정한 재래시장이라 받는 혜택이 많다고 했다. 매주 일요일은 모든 가게가 다 쉬어 휴일도 보장된다는 말도 솔깃했다. 고민하는 순기에게 선옥은 말했다.
"엄마, 어떤 일이든 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해. 후회는 모든 선택에 뒤따라오는 거야. 그럴 바에는 뭐라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겠어?"
그 말을 따라 순기는 용기를 내었다. 서방 팔자 잡아먹을 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순기에게 용기란 사치품 같은 것이었다. 용기는 자기 자신을 더 뚜렷하게 만드니까. 순기의 삶에서 순기 자신의 이름보다 '엄마', '오라이 아줌마'라는 이름으로 사는 날이 훨씬 많았다. 아니, 사실 대부분의 날에 '순기'라는 이름은 없었다. 순기가 용기를 내면 김순기로 살고 싶어질까 봐, 그게 앞길 창창한 우리 애들의 길을 혹여나 막을까 봐 숨죽이며 살았다. 엄마나 오라이 아줌마로 사는 일도 나쁘지 않으니까 괜찮았다. 어떤 이름으로든 지켜온 삶인데 오라이식당마저 없어진다면 정말 순기는 영영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보고 후회해도 후회하리라. 그렇게 종로의 재래시장에서 순기는 새 오라이식당을 열었다.
순기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오라이식당은 바쁘게 굴러갔다. 순기의 음식 솜씨야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타고난 성실함과 빠른 손에 대한 칭찬이 소식 빠른 시장 바닥에 다 퍼졌다. 주택가 골목에서 장사할 때와는 확연히 다른 속도로 식당은 자리를 잡아갔다. 예전 방송을 보고 온 사람들은 그 오라이식당이 이 오라이식당이 맞냐며 부러 찾아왔고 덩달아 오라이식당 주변 가게들도 호황을 맞이했다. 오라이식당에 온 김에 옆 청년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사가기도 하고 건너편 평화 건어물 집에서 김과 마른 멸치를 사 가는 사람도 많았다. 시장에서 순기는 '오라이 아지매'로 통했다. 평화 건어물 집 사장님의 심한 부산 사투리 때문에 아줌마에서 아지매로 변경된 것이다.
"오라이 아지매 땜에 내가 요즘 덕본다 아입니까. 오라이 아지매도 보니까 인생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이렇게 우리 시장 와서 내 진짜 마음이 좋다. 나는 오라이식당에 너무 감사해 정말." 이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건네는 건어물 집 사장님의 마음이 순기는 아찔할 만큼 고맙다. 세상에 치여 살다보면 남에게 칭찬 한 마디 내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순기 알기 때문이다.
윤미가 서너 살이 될 때부터 미자도 함께 종로로 나와 식당 일을 거들었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윤미는 손님들의 귀여움을 한몸에 받았다. 불과 칼이 난무하는 곳이 식당인지라 대부분의 시간은 미자의 등에 엎여있었지만 미자는 아무래도 좋은 눈치였다. 미자가 선택한 삶도, 순기가 왈칵 낸 용기도 다 제값을 치뤘다. 가끔 일찍 퇴근한 선옥이 저녁 장사를 돕기도 했다. 순기는 고생스럽다며 미자와 선옥에게 집에 가서 쉬라고 했지만 두 딸들은 언제나 묵묵히 순기의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우리 들어가면 엄마 혼자 어떻게 술주정뱅이들을 상대해? 저녁 장사는 험해서 안돼. 9시까지 장사하지 말고 그냥 7시까지 하자. 요새 다 그렇게 한다더라."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장사는. 장사는 손님들과의 약속이 전부인 거라. 식당은 손님이 돌아보면 어느 때든지 거기에 있어야 하는 거다. 그렇게 야금야금 편한 방법으로 바꾸면 손님도 약 올라서 안 오는 거야."
미자와 선옥은 이미 예상한 대답이라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돌릴 뿐 군말 없이 순기의 말을 들었다. 가장 안정적일 때, 딱 이만큼만 살면 좋겠다 싶을 때 비바람은 몰려온다. 하늘이 순식간에 새카매지고 두터운 구름이 맑은 하늘 조각을 남김없이 먹어치우면 귓전이 멍멍해질 만큼 무섭게 장대비가 쏟아지기 마련이다. 빗물은 형체 없는 액체이지만 장대비는 지붕도 뚫을 만큼 강력한 화살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