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순기 - epi. 9
"사람 구실도 못하는 삼 대 독자가 무슨 소용이야!"
식당 주방에서 저녁으로 먹을 찌개를 끓이고 있는 순기의 뒤통수에 여차하면 베일 수도 있을 것 같은 연자의 말이 날아왔다. 연자는 몇 개월에 한 번씩 이렇게 식당에 불쑥 찾아와 순기의 가슴을 후벼파는 말들을 늘어놓는다. 오늘은 처음으로 종로 오라이식당에 연자가 온다고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시장에서 불티나게 팔리는 유명한 꽈배기도 한 봉지 사놓고 연자가 좋아하는 육포도 여러 묶음 구해 한 보따리 만들어 놨는데 기껏 와서 한다는 소리가 또 칼날 같다. 화르르 끓는 찌개가 넘치기 전에 가스불을 껐다. 손에 있는 물기를 앞치마에 닦아내고 연자 앞에 찌개를 내려놓고 미간 사이에 힘을 주며 순기가 말했다.
"니 아들 아니고, 내 아들이여. 너보고 책임지라고 안그럴테니께 얼른 밥이나 먹자. 응?"
연자는 동범의 방황을 늘 껴안고 사는 순기가 항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에게는 엄하디엄한 순기가 아들 일이기만 하면 퍼주고 퍼주고 나중엔 배를 갈라 내장까지 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동범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시내 나이트를 줄기차게 다니며 여자들을 달고 다녔다. 제대로 된 일도 안 하고 순기에게 용돈이나 타내 놀러 다니던 동범은 그렇게 일 년을 내내 놀고 뜬금없이 순기에게 만화방을 인수하겠다고 말했다. 친한 선배가 만화방을 하는데 급히 지방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 헐값에 가게를 내놓았다고. 순기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호통을 치며 동범의 말을 끊었지만 연자는 순기가 동범의 꾐에 넘어가지 않은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생각했었다. 정말로 동범은 그 만화방을 인수해 운영했었다. 아마도 순기의 치마폭에서 나온 돈이었으리라고 연자는 짐작했지만 순기는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뭐가 되었든 가게를 시작했으면 부지런히 쓸고 닦으며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지만 그 게으르고 뺀질뺀질한 동범이 퍽이나 성실히 일해 만화방을 번성시켰겠다. 언제나처럼 술에 절어 가게 문을 닫아놓고 여자를 꾀어 헛짓거리만 해대느라 얼마 지나지 않아 월세가 밀려 쫓겨났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장동범. 연자는 사회에 일절 도움이 안 되는 인간이 바로 자신의 동생, 장동범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동범이한테 만화방 차려줬던 돈만큼 나 시집갈 때 보태줄 거야? 왜 허구한 날 저 머저리 같은 자식이 하고 다니는 짓 뒷바라진데! 그럴 돈 있으면 나한테나 주지. 둘째 딸은 술 팔면서 쎄가 빠지게 돈 모으는데 그놈한테 흘러간 돈이 돈이 돼서 나온 적이 있긴 하냐고. 그 자식 정신 차리려면 엄마가 먼저 정신을 차려야 한다는거 몰라?"
"장연자, 너 그만해라."
"엄마는 결국 삼대독자 못 이길 거야. 국민학생 때까지 포대기로 업어서 등교시켰는데 어련하시겠어. 나는 왜 딸로 태어났나 몰라. 나도 아들로 태어났으면 용돈 탁탁 받아 가면서 술이나 퍼마시고 여자나 후리고 다녔을 텐데."
"동범이나 너나 다 내 뱃속에서 나온 내 자식들이여. 그리고 너들 나한테 돈 맡겨 놨냐. 세끼 내내 뜨신 밥 해 먹이고 남편도 없는 홀애미가 피똥 싸게 너들 키워놨는디 은혜는 갚지 못할망정 어째 니 두 연놈들은 허구한 날 엄마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냐, 응? 그냥 나가서 니들 마음껏 살어. 니들 엄마 찾지 말고!"
늘 이런 식이었다, 순기와 연자의 대화는. 어쩌면 연자의 불같은 성격과 기질은 모두 순기로부터 나온 것일 테다. 연자는 커오는 내내 기어코 순기가 회초리를 들게 만들었다. 연자는 맞으면서도 그 입을 다물지 못했다. 어릴 때는 항상 바지런해 학교 다니면서 뭐가 그리 바쁜지 친구들 사이를 오가며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챙겼었다. 정이 많은 연자의 성정을 영주는 항상 칭찬했다. 남을 갸륵하게 여길 줄 아는 것은 인생을 살아갈 때 꼭 필요한 능력이라 말했다. 하지만 연자의 큰 목소리와 불같은 성정 때문에 연자의 여리고 정 많은 속내가 늘 가려지기 마련이었다. 종로에 오라이식당을 열겠다고 말했을 때 연자는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그 사람 많고 지저분한 시장 골목에 뭐 하러 식당을 내냐고 말하면서도 순기에게 계좌번호를 불러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100만 원을 보내왔다. 이왕 도와줄 거 좋은 말로 도와주면 어떠냐하고 꿀밤을 쥐어박고 싶었지만 돈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연자가 100만원이라는 큰 돈을 보내왔다는 건 엄마를 응원한다는 뜻이라는 걸 순기는 모르지 않았다. 연자와 동범이가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선옥과 함께 앉혀놓고 순기는 말했다. 엄마 혼자 버는 돈으로 너네 셋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것까지는 할 수 있지만 만약 너희가 대학에 가고 싶다면 그때부터는 온전히 너희의 힘으로 해야 한다고. 이 엄마가 할 수 있는 것은 딱 학생 때까지만이라고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연자는 이제야 날개가 달렸다는 듯 바쁘게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돈이 될만한 일들을 주저 없이 해나갔다. 고등학생 때는 돈을 벌려고 해도 미성년자라 써주는 곳이 없었다. 가끔 선옥과 함께 거리에 나가 전봇대나 대문 등에 전단지를 붙이는 소일거리나 이목구비가 없는 인형에 본드를 발라 플라스틱 코와 눈알을 붙이는 것이 제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전부였다. 어릴 때부터 연자의 꿈은 돈을 아주 많이 버는 것이었다. 돈이 있으면 엄마처럼 굽신거리며 음식을 팔지 않아도 되고 언니처럼 남자에게 기대지 않아도 된다. 무엇보다 수중에 돈을 많이 쥐는 것이 가장 빨리 성공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좋은 대학교를 나오지 않아도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어도 돈이 있다면 사람들이 위로 떠받들어주는 삶을 살 수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돈을 많이 벌고 싶었다. 연자는 오피스 지역이 밀집한 동네의 호프집에서 서빙을 하고 단란 주점에서 안주를 만들며 목돈을 모았다. 술 파는 가게에서 좋은 꼴 볼 게 없다고 순기가 연자를 말렸지만 술을 파는 장사여야지만 노력에 비해 돈이 많이 남았다.
순기의 말대로 술집에서 일하다 보면 거하게 술 취한 아저씨들이 연자의 온갖 군데를 주물러댔다. 실수인 척 연자의 엉덩이에 자신의 사타구니를 붙이는 사람도, 대놓고 연자의 젖가슴을 쥐는 정신 나간 또라이들도 있었다. 눈에 끼가 있다며 밤일을 도와주면 용돈을 섭섭지 않게 챙겨주겠다는 노망난 노친네들도 숱하게 만난 게 연자였다. 자신의 가게를 차리면 이런 재간 없이 발정 난 인간들을 절대 내 손으로 상대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끓어오르는 화를 내려 삼켰다. 그렇게 아득바득 돈을 모은 끝에 연자는 의정부 시내에 어엿한 자신의 호프집을 낼 수 있었다. 연자의 호프집은 대박이 났다. 의정부 시내에서 장연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니까. 연자는 몇 달 만에 한 번씩 서울에 오면 온갖 비싼 것들로 몸을 치장하고 왔다. 알이 커다란 루비 보석 세트를 손가락, 귓구멍, 목, 팔뚝에 걸쳤고 흡사 거대한 밍크털 코트가 연자의 작은 체구를 집어 삼켜 버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연자에게는 돈이 최고의 벗이자 적이었다. 돈을 살살만 굴리면 안 될 것도 없으며 잠깐만 방심해도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아 버릴 것도 돈이었다.
"그래서 그 새끼는 뭐하고 다닌데? 동범이 말이야." 연자는 순기가 차려놓은 밥상에는 손도 안 대고 냉장고에서 맥주를 꺼내 홀짝홀짝 마시며 물었다.
"내 아들한테 그 새끼라고 한 번만 더 해라. 아주 그냥 버르장머리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까. 동범이는 지 알아서 어련히 잘 살 것지." 순기가 한 김 식은 찌개를 숟가락으로 뜨며 미간 사이를 더 구겼다. 어쩌다 이 두 꼴통들이 내 배에서 나왔을까 하며 말이다.
"장동범, 나한테 전화 왔어. 지금 걔 또 헛짓거리하고 다녀, 엄마. 나한테 전화 와서는 돈 좀 빌려 달라고 사정사정하길래 뭣 때문에 얼마가 필요하냐고 물으니까 참나, 걔가 아주 획기적인 사업 아이템이 생각이 났는데 이걸 사업화하려면 몇 천만 원이 필요하고 어쩌고... 어휴, 진짜. 그러니까 엄마도 동범이 전화받지 마. 혹여나 돈 달라고 찾아오면 절대 주지 말고. 알겠지?"
연자는 꼬았던 다리를 풀고 일어나 손으로 스커트를 털었다. 짤막하고 통통한 다리를 받치고 있는 뾰족하고 높은 에나멜 구두, 짧은 미니스커트로 간신히 가린 퉁퉁한 엉덩이, 손에 든 작고 앙증맞은 사이즈의 핸드백. 뭐든 비싼 거라면 사족을 못 쓰고 사 제끼고 보는 연자가 순기는 영 탐탁지 않았지만 애써 무시했다.
"그러니까 엄마, 동범이한테 또 속지 말고. 돈 단속, 아들 단속 잘 해. 나 이제 갈게. 가게 오래 비우면 안 돼서."
"야야, 연자야! 이거 들고 가! 너 좋아하는 육포 잔뜩 허니 사다 놨는데 그냥 가면 쓰냐!" 저녁 장사를 마치고 겨우 저녁밥을 먹던 순기가 보따리를 들고 연자를 쫓아나간다. 연자는 이렇게 불쑥 순기를 찾아와 그리웠던 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볼 겨를도 없이 가시 돋친 말들만 하고 떠난다. 연자의 속은 그렇지 않다 몇 번을 되뇌어도 순기의 가슴은 쓰리고 따갑다. 연자가 앉아 있던 자리에는 두툼한 돈 봉투만 남아있다.
*
참가번호 18. 이름표를 가슴에 달고 문화센터에서 두 번째로 큰 강의실에 순기가 들어섰다. 순기가 늘 민요 수업을 받던 곳이라 너무나 익숙한 공간이지만 두 발을 강의실에 들여 놓으니 조금 다른 냄새가 공기 중에 서려 묘한 긴장감을 줬다. 노래자랑 예선전 심사위원들은 순기의 민요 선생님과 어린이 동요 수업 선생님, 그리고 문화센터 장, 이렇게 세 명이 전부였다. 평소에 강의실을 가득 매우던 접이식 의자는 남김없이 다 접혀 한 쪽 벽에 파도처럼 밀려져 있었다. 순기가 들어오자 민요 선생님이 아는 체를 했다.
"아이고, 김순기 여사님! 우리 민요 수업의 모범생이세요. 단 한 번도 수업에 빠지지 않으시고 어찌나 열심히 참여하시는지 모릅니다. 아유, 이런. 이렇게 아는체하면 부정 심사인가요? 하하하-" 민요 선생은 너스레를 떨며 사람 좋은 웃음을 내보였다. 다른 심사위원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참가번호 18번 님, 저희 오며 가며 몇 번 뵈었죠? 오늘 너무 긴장하지 마시고 편안하게 노래 불러주시면 돼요. 이번에 어떤 노래로 참가하시죠?" 문화센터 장이 물었다.
"크흠- 네. 지는 김순기라고 하고요. 오늘 부를 노래는 창부타령이라고 하는 민요입니다. 잘 부탁드려유." 긴장이 되었는지 자꾸만 덜덜 떨리는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누르며 순기는 눈을 감았다.
냉장고에 삐뚤빼뚤한 글씨로 적어 붙여둔 노래말이 바로 이 창부타령이었다. 여러 민요가 있었지만 순기의 첫사랑은 창부타령이다. 한 자 한 자 뼈에 새기듯 가락을 시작했다. 눈을 감자 순기의 눈 앞에 선명한 영주의 얼굴이 나타났다. 영주가 앞에 있었다면 춤이라도 추면서 불러주고 싶었던 노래였다. 창부타령은 원래 아주 신나는 노래니까. 꽹가리와 장구가 쉬지 않고 박자를 타며 아주 기분좋게 부르는 노래지만 오늘은 아주 천천히 이 노래를 부른다. 빠른 박자지만 어쩐지 가려진 아픔이 있는 가삿말을 식당에서 내내 곱씹어 보다 순기만의 방식으로 천천히 가락을 읊었는데 그게 딱 순기의 마음에 들었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아주 곱게 간 까아만 먹을 듬뿍 묻힌 붓으로 써 내려가듯이 박자를 탔다. 눈을 꼭 감은 순기가 그 음에 맞춰 살며시 두 팔을 움직였다. 두 팔은 공기의 움직임을 가늠하려는 듯 살랑거리며 흔들렸다. 깜찍한 강아지의 머리를 쓸어내리듯 손바닥을 허공에서 움직이고 무릎은 어느새 팔의 움직임을 따라 천천히 오르내렸다. 그 모습이 덩실덩실 기분 좋게 춤추는 익살꾼의 춤을 아주아주 느리게 재생한 것 같았다. 순기의 감은 눈꼬리와 입꼬리는 서로 닿을 듯이 구부러졌다. 가장 행복한 순간을 보내듯이, 아니 아주 큰 슬픔을 들키지 않으려 미소를 짓는 사람 같기도 한 표정이었다.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나
성화를 바치어 무엇하나
속상한 일도 하도 많으니
놀기도 하면서 살아가세
청사초롱에 불 밝혀라
잊었던 그 님이 다시 온다
공수래 공수거하니
아니나 노지는 못 하리라
순기는 이 노래에 담긴 이야기가 참 좋다. 창부, 무당의 남편이 부르는 노래이다. 굿을 하는 아내를 위해 굿판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아주 신이 나게 불렀던 노래. 백정보다 못한 무녀를 사랑한 남자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똥수깐에서 똥을 푼다고 해도 재수 옴 붙는다며 사람들은 치를 떨고 창부에게 소금을 뿌렸다. 창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무녀의 굿판을 돕는 일이다. 인간이 대적할 수 조차 없는 신에게 정조까지 바쳐야 하는 아내를 먹먹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일. 손끝만 대도 살갗이 떨어져 나가는 칼날 위에 발을 대고 서서 피를 줄줄 흘리는 당신의 아내를 마주하고도 아주 신명나게 장구를 치는 창부. 눈가리개로 두 눈을 가리고 비틀거리며 칼날 위에서 중심을 잡는 아내의 모습을 외면하며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창부는 자신이 슬퍼하면 아내 몸으로 내려오는 신이 노할까, 무녀 주제에 음탕하게 땅에 남편을 두었다고 아내에게 장난을 치지 않을까 무너지는 마음을 가리고 더 크게, 더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고통에 무뎌지고 감각에 예민해져 흰자위가 훤히 드러난 아내를 그저 곁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는 창부의 마음. 보잘것없는 인간 밖에 되지 못해 신에게 아내를 내어줄 수 밖에 없는, 아내를 지킬 수도 없는 비참한 창부의 마음이 혹시 영주의 마음 같지 않을까 했다. 죽음 건너에 있는 영주는 순기에게 아무것도 되어줄 수가 없다. 힘이 될 수도, 사랑이 될 수도, 버팀목이나 친구가 되어 줄 수도 없다. 영주는 지금 딱 창부의 마음이지 않을까. 혹시 영주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달라고 이 노래를 건네었을까.
그렇게 천천히 부른 노래가 끝이 났다. 순기가 감았던 눈을 뜨니 순기의 민요 선생님이 걸어왔다. 그리고 그녀를 폭 껴안으며 말했다.
"한. 그게 한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