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굿바이, 순기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퇴근을 한 그에게 수고했다는 짧은 말과 함께 이번 주 머리를 짜내며 쓴 순기의 마지막 이야기를 보여주겠다 말했다. 이미 완벽한 형태의 메일로 테스트 발송을 해놨기 때문에 간단히 태블릿을 켜 손에 쥐여주니 그는 기다려왔다는 양 태블릿을 들고 혼자 만의 공간으로 들어갔다. 그가 이야기를 다 읽을 동안 떨리는 마음을 애써 무시하려 인스타그램을 들여다보고 공허한 하트를 눌렀다. 딱 열 번째 순기의 이야기를 보낸 직후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발송일까지 단 며칠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나는 동명을 개새끼로 만들었다가, 측은한 아들내미로 만들었다가, 아예 다 뒤엎고 선옥의 이야기로 넘어가기도 하며 일주일을 보냈다. 빈 컴퓨터 화면을 글씨로 까맣게 칠했다가 다시 백스페이스 버튼을 한참 누르고 있는 짓을 반복했다. 그러다 조급해진 마음으로 하루 종일을 들여 쓴 글을 썼다. 그게 지금 그가 읽고 있는 순기의 마지막 이야기이다.
순기를 마무리 지으며 가장 먼저 든 마음은 후련함이었다. 이제 다 썼다는 안도감, 순기에게서 해방이라는 개운함이 몇 개월간 사랑해 마지않았던 그녀가 사라진다는 섭섭하고 서운한 사실보다 앞섰다. 여러 번 퇴고를 하면서 읽어 본 마지막 이야기는 도마뱀이 꼬리를 댕강 잘라버리고 떠나듯 급하게 마무리한 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래도 제 삼자의 의견을 듣고 싶어 순기의 가장 큰 팬인 그에게 객관적인 총평을 들어보기 위해 기다렸다.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읽어준 그가 처음 나에게 물은 말은 순기를 빨리 끝내고 싶은지였다. 그 질문이 내가 순기의 이야기를 끝내며 품은 마음과 너무 일치해서 소리 내어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런 인내와 노력 없이 급히 소설을 마무리하며 포기해버리고 싶었던 내 자신이 열없어서 도리어 마녀같이 깔깔대고 웃었다. 그때 나는 순기의 이야기가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순기는 나의 외할머니다. 엄마는 늘 할머니가 여걸이었다고 말한다.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다부지게 삶을 마주해 어린 네 자식들을 먹이고 기르며 꺾이지 않는 인생을 살아내셨다고 말이다. 내 기억 속 할머니는 소설 속 민요를 흥얼거리며 돌솥비빔밥을 만드는 순기와 흡사하다. 내가 소설화한 '순기'라는 캐릭터는 나의 외할머니인 김순기 여사와 분명 다른 인물이지만 그녀를 모티브로 써 내려갔기 때문에 소설을 쓰는 내내 이미 의식의 저편에 잠들어버린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 솎아내고 거르고 다듬었다. '순기'라는 이름을 제외한 모든 인물들의 이름과 상황은 허구의 것이다. 처음 할머니의 삶을 소설로 써 보자고 다짐하고 몇 번을 좌절했는지 모른다. 실제 존재했던 사람의 인생을 내가 어디까지 변형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갈등이 글을 쓰는 내내 날 힘들게 했다. 엄마의 언어를 통해 듣는 할머니의 삶은 참 고됐다. 하지만 울퉁불퉁했던 할머니의 삶조차 김순기 여사가 가진 삶에 대한 열정을 꺾진 못했다. 그건 할머니의 우렁찬 목소리에서 이미 느껴졌다. 엄마조차 너무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나지 않는 할아버지의 생전은 그가 소설처럼 국민학교 선생님이었다는 것과 극중에서처럼 아주 과묵하고 반듯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한순간 세상을 등지고 떠나자 가정의 모든 무게가 할머니에게로 실어졌을 때부터 순기의 소설은 시작되었다.
내가 한글을 띄엄띄엄 읽을 수 있게 된 시점에 오라이식당 냉장고에 붙여져 있는 민요 가사를 할머니 앞에서 읽은 적이 있다. "충신은 만조정이요" 그 첫 소절을 읽고 할머니가 나를 너무나 뜨겁게 칭찬해 주시던 바람에 그 민요의 맨 마지막 가사까지 달달달 외워서 할머니 앞에서 불렀었다. 나는 할머니의 막내딸, 그러니까 극중 선옥으로 나오는 딸내미의 손녀다. 가장 어린 손주가 조막만 한 손을 허리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며 민요를 부르니 얼마나 예뻤겠는가. 그 후 할머니는 나에게 한복을 사주고 미니 장구라고 부르던 아주 조그만 장구를 사주셨다. 이마 뒤로 깨끗하게 머리를 넘겨 쪽을 지고 진한 분홍색의 비단 한복을 입은 나를 데리고 할머니는 노인정에 갔다. 미니 장구였지만 조이개까지 완벽한 장구라 그와 어울리는 작은 열채와 궁채가 더불어 내 손에 들려졌고 할머니를 따라 노인정에서 여러 장단을 배웠다. 아마 그때 할머니는 그 많은 손주들 중에 나를 가장 아꼈지 않았을까 싶다.
김순기 여사의 삶은 내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내 기억 속의 할머니는 늘 박자를 타며 노래를 흥얼거리는 밝은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손에는 열채를 쥐고 허벅다리를 타닥타닥치며 덕, 기덕, 더러러러의 리듬을 타는 모습이었다. 커다란 은색 들통에 사골뼈를 가득 넣고 밤새 팔팔 끓이면서, 소쿠리 가득한 열무 줄기를 다듬으면서도 그녀의 발가락이나 손가락은 항상 리듬 위에 있었다. 소설 속 순기가 민요를 연습하고 노래자랑 예선을 나가는 장면에 몹시 심혈을 기울인 것도 그 때문이다. 그녀의 최애 손주로써 그녀의 별났던 민요사랑을 꼭 담고 싶었다. 실제로 할머니는 민요 대회에 나가기 위해 수십 벌의 한복을 맞추고 몇 개의 장구를 샀다. 그녀는 때때로 대회에 나가 냉장고, 김치냉장고, 세탁기, 심지어 컴퓨터까지 상품으로 타와 간간이 우리의 세간살이를 채워줄 정도로 노인들 사이에선 유망했다. 내가 그녀의 빛나는 민요 성공 스토리를 짤막한 소설로 담기엔 순기가 지나온 인생이 너무나 지난했다. 미자, 연자, 동범이와 선옥이 개개인이 가진 순기와의 관계 또한 커다란 줄거리로 남기고 싶었는데, 이렇게 한 주 한 주 주먹구구식 소설을 쓰는 것보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시간과 지면을 여유 있게 두고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 열 편의 이야기를 끝으로 순기라는 소설은 잠정 중단하기로 했다.
할머니는 여든이 훌쩍 지난 연세에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극중 미자로 나오는 나의 큰이모가 차린 식사를 맛있게 다 비우시고는 다음날 침대에서 잠들듯 조용히 세상을 떠나셨다고 한다. 그리고 일 년 뒤 극중 동범으로 묘사된 나의 외삼촌이 돌아가셨다. 그는 생전 할머니가 살았던 빈 집에서 쓰러져 발견된 뒤 삼일 만에 고인이 되셨다. 순기의 삶이 끝이 나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엄마는 그때 할머니가 외삼촌을 데려간 것이라고 말한다. 외삼촌은 변변한 직업도 없이 살아왔다. 젊은 시절 슬하에 아들과 딸을 낳고 이혼해 그 누구도 자식들을 돌보지 않자 할머니가 그 손주들을 거둬 이십여 년을 키웠다. 할머니가 떠나고 그렇게 한량 같은 삼촌이 집에 들어와 살면 가장 고생일 것은 그 자식들일 터라 아마도 먼저 떠난 할머니가 외삼촌을 데려가신 것 같다고 들었을 때부터 나에게 할머니는 그저 할머니가 아닌 여걸 김순기로 각인되었다. 죽음까지 멋진 여걸.
순기의 생애를 써오는 동안 나는 너무나 즐겁고 신난 동시에 너무나 괴로웠고 힘들었다. 내 기억 속 할머니처럼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는 순기의 모습을 묘사할 때는 더없이 행복했다가도 순기가 견뎌내야 하는 굴곡들을 써 내려가야 할 때는 찰랑찰랑한 감정의 수면이 올라와 감당하기 상당히 벅찼다. 극중 순기가 선옥과 함께 백화점에서 옷을 살 때, 노래자랑 대기실에 순기를 응원하러 찾아온 선옥을 발견했을 때, 선옥과 함께 종로 길거리를 구경할 때, 순기에게 이와 비슷한 삶의 모양이 많도록 소설을 써 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참 미안하다.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변형되고 폐기될 순기의 마지막 이야기 중 한 부분을 붙이며 순기에게 잠시 안녕을 고한다.
***
당신 처음 만났을 때 말이에요. 나한테 그랬잖아요. 바람결에 솔솔 묻어나는 내 냄새가 참 기분 좋다고. 그래서 나는 당신 말마따나 향기로운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어딜 가나 사람들에게 기분 좋은 잠깐을 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요. 그 사람들 중에 나의 가장 깊은 냄새를 맡는 사람이 당신이길 바라면서요. 웃기지요. 어떻게 그때는 그런 동화 같은 꿈을 꾸었을까요. 정작 평생 내게서 나는 냄새는 고기 비린내에 온갖 기름 냄새뿐인데요.
나는 말이에요. 당신이랑 헤어질 날이 이렇게나 빨리 올 줄 몰랐었어요. 양복점에서 재간이나 피울 줄 알았지 당신 몸에 이상이 있다는 걸 땀구멍 하나 없는 어린 내가 어떻게 짐작이나 했겠어요. 혼인을 했다고, 애를 낳았다고 어른이 되는 게 아니었지 뭐예요. 어린 나는 이제 우리 여섯 식구 입에 맛있는 음식 넣어주며 살면 되겠다 하고 소설의 끄트머리를 쓰고 있었나 봐요. 내 인생의 소설은 당신을 잃고 나서부터 시작인데 말이에요.
영주 씨.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당신 이름이 조금 낯서네요. 당신은 왜 이렇게 나에게 맡기고 간 것이 많은지.. 당신 없이 사는 삶이 참 고됩디다. 젊은 나는 요령도 없이 악으로만 살아서 하루하루가 억겁이었는데, 그럼에도 나무에 걸린 눈이 녹고 청무가 우거지며 물결은 요리조리 잘도 흘러갔지요. 당신도 봤지요? 내가 이겨낸 하루들, 계절들, 세월들. 잘했다고 말해줘요. 이왕 말해주는 거 등도 토닥여주고 손등도 어루만져 주고 입도 맞춰주세요. 나는 매일같이 당신 곁에 갈 날만 기다렸단 말이에요. 그곳에서 만나면 꼭 안아주세요. 우리 젊을 때 그랬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