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알려줄까, 비밀 양념장?
요즘 나는 기다란 호흡으로 무언가에 집중하는 법을 익히는 중이다. 지금의 게으름 때문에 미래의 나에게 똥자루를 선물하지 않기 위해 지속적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법을 연습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서 딱 한 번만 컴퓨터를 켜고 책상에 앉아보는 것이다. 최근 그에게 아이맥을 선물 받고 컴퓨터가 없어서 집에 오면 누워 있는 것이라고 핑계 댈 수 없게 되자 이제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심정으로 세운 나만의 결심이다. 정말 간단한 일인데 이게 엄청난 다짐을 필요로 한다. 버튼 하나만 눌렀다 떼면 되는 간단한 일이지만, 퇴근하고 돌아온 나는 어딘가 불편한 사람처럼 컴퓨터 책상 주변만 빙빙 돌다가 줄곧 섹시한 눈초리로 나를 유혹하는 소파의 그 따뜻하고 푹신한 품을 떨치지 못하고 폭 누워버리고 만다. '퇴근 후 한 시간으로 월급보다 많은 부수익 창출하는 법'같은 서적을 써낸 작가들은 진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퇴근 후 또 한 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무언가를 해낼 수 있는 건지. 꾸준함의 힘은 시대와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속삭이는 비법 양념장 같은 것이지만, 그 비법 양념장을 아무리 퍼주고 내주어도 내 근성의 근본은 변덕이라 맛 내기가 쉽지 않다.
꾸준함을 지키는 가장 빠른 방법은 바로 습관 만들기일 것이다. 조예은 작가의 한 소설에는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버지가 나온다. 분명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 분명한데 일상 속 아빠의 행동은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아침 일찍 일어나 씻고 독한 향을 풍기는 스킨을 얼굴에 두들기고 넥타이를 매고 아침을 먹으며 신문을 보는 루틴을 아빠 좀비는 조금도 틀리지 않고 지켜 나간다. 설령 아침밥공기가 빈 그릇일지라도 신문이 손에 거꾸로 들려 있어도 아빠 좀비는, 삼십 년 내내 매일 아침 하던 것처럼, 허공에 수저질을 하고 비어있는 눈동자로 뒤집힌 신문 속 활자를 응시한다. 아빠 좀비가 출근하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꽁꽁 묶어 방에 가둬놔도 그는 일상대로 출근길에 오르기 위해 잠긴 방문을 온몸으로 부순다. 꾸준함이 습관으로 자리할 때 좀비 바이러스도 어쩌지 못하는 모양이다. 좀비 바이러스까진 아니지만 게으름과 귀찮음을 핑계로 미래의 나에게 모든 것을 차일피일 미루는 지금 내 꼴을 더 이상 보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퇴근 후 운동을 시작하기로 했다.
어린 시절, 엄마는 뭔가를 시작하려는 나에게 꼭 이런 말을 덧붙였다.
"할 거면 꾸준히 해야 돼."
피아노 학원에 가고 싶다고 할 때에도, 일본어나 그림을 배우고 싶다고 말할 때에도 엄마는 항상 '꾸준히'하라고 말했다. 엄마가 꾸준히라는 단어를 내뱉을 때마다 하고 싶던 마음이 반으로 줄었다. 꾸준히의 무게란 어린아이에게도 상당한 것이다. 내가 무엇이 되었든 '꾸준히' 한다고 가정했을 때 엄마는 전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사람이었지만 그렇지 않으면 시작조차 못하게 만드는 사람이기도 했다. 뭔가를 매일매일 열심히 할 수는 없겠지만 꾸준히는 해보라는 게 엄마가 나를 가르치던 방식이다. 하지만 내 삶에서 엄마의 영역이 작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시작과 동시에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는 책임감을 의식하지 말고, 하고 싶은 것들을 주저 없이 해보기로 했다. 대학에서 처음 전공한 영어영문학과가 너무 따분해 때려치웠고, 호기심에 들어간 심리학과는 뜬구름 잡는 이론들 범벅이라 그만뒀다. 한국으로 돌아와 아예 새로운 학과 전공으로 졸업을 하고 그즈음 또다시 다른 학문이 멋져 보여 대학원에까지 들어갈 정도로 나는 변덕스럽다. 그래도 어릴 때부터 엄마가 누누이 꾸준하라고 가르친 덕에 내가 선택한 길은 최소 이 년 정도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퇴근 후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요즘 들어 내 또래 운동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느는 것을 실감하며 일이 끝나면 소파 껌딱지처럼 눌어붙어 있는 내가 요즘 세태를 거스르는 것이 아닐까, 되도 않는 걱정을 했다. 다들 살려고 운동한다는데 나는 사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가뜩이나 피곤에 절어있는 내 육신을 끌고 헬스장에 가서 곡소리가 절로 나오는 무게를 치고 좀비 같은 모습으로 유산소를 하는 것이 더 가학적이지 않은가 생각했다. 작년 한 해 일주일에 고작 2번의 필라테스 수업 듣기를 포기하고 수업료 기부천사가 된 내가 다시 운동을 시작할 마음을 먹을 줄 몰랐다.
한 달 전쯤 과로에 몸이 아작 나기 시작했다. 건강만큼은 자부하던 내 몸이 몇 초 동안 시력과 청력을 포기할 만큼 약해지고 나서야 일상을 잘 살아내기 위해서라도 버티는 힘을 길러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알겠다. 운동은 무해백익 하니 내가 한다, 해. 하지만 과연 어떤 운동을 해야 꾸준함의 미학을 이뤄낼 수 있을까. 아니, 뭔들 꾸준하게 할 힘이 남아 있을까.
오랜만에 만난 엄마는 나에게 탁구를 강력추천했다. 우리 엄마의 탁구 구력은 자그마치 10년이다. 한국 나이로 예순이 넘은 그는 돌 같은 허벅지를 자랑한다. 운동의 운 자도 모르던 엄마는 10년 전, 집 근처를 지나다 열려 있는 지하 탁구장에 홀린 듯 들어갔다. 등록하러 오셨냐는 관장의 말에 "아, 그냥 지나가다가 궁금해서 들렀어요."라고 얼버무리고 다시 탁구장을 나서려는데 불현듯 '지금 내가 여기서 나가면 다신 안 돌아오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 다시 관장에게 돌아가 덜컥 등록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일주일 간 탁구장에 나가 본 엄마는 관장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난생처음 취해보는 어정쩡한 자세에, 수업 내내 공은 안 주고 허공을 허우적거리는 동작만 하고 있으니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창피했다. 거기다 구장답게 기존 회원들의 태도는 중학생 일진들을 방불케 할 만큼 수직적이었다. 탁구 왕초보인 자신만 투명인간 취급하며 함께 쳐주지도 않는 그 오묘한 분위기에 이건 내가 할 운동이 아니다고 생각한 찰나, 관장은 딱 3개월만 다녀보면 어떻겠냐 제안했다. 3개월 후에도 재미가 없다면 붙잡지 않겠다고 관장은 얘기했다. 그렇게 엄마는 탁구장 관장의 속삭임에 넘어가 올해로 10년 차 생활탁구인이 되었다.
10년 차의 생활탁구인은 나에게 무언가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재미를 느끼기 전까지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엄마는 매일 퇴근 후 저녁 6시부터 밤 11시까지 탁구를 치다 속옷까지 흠뻑 젖을 정도의 땀을 흘리고 집에 돌아온다. 그런 열정적인 생활탁구인도 탁구장 가는 길은 어찌나 귀찮은지 모르겠다고 한다.
"엄마도 탁구장 가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는지 아니? 오늘은 가지 말까? 집에 가서 집안일할게 태산인데 오늘은 쉴까 하면서도 그냥 습관처럼 일단 가보는 거야. 운동을 할지 안 할지는 거기 가서 정하는 거지. 그냥 일단 가보는 거야."
예순이 된 엄마가 총명한 눈으로 탁구경기 영상을 찾아보며 매일 탁구장에 나가 땀을 한 바가지 흘리고 돌아오는 모습은 나에게 가장 큰 자극된다. 엄마의 머릿속에는 온통 탁구 밖에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나도 모든 일의 비법 양념장 같은 꾸준함을 연습한다.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빠 좀비가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는 것처럼, 엄마가 습관처럼 일단 탁구장에 가보는 그 모습처럼 말이다. 귀찮음과 게으름이 난무하지만 요즘 나도 매일 운동을 간다. 엄마의 말처럼 아무 생각 없이, 습관처럼, 그냥 간다. 허벅지 근육을 불태우며 스쿼트를 하고 파들파들 떨며 이 키로 짜리 덤벨을 양손에 쥔다. 이렇게 꾸준히 하다 보면 우울에 휩싸인 날도, 도저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습관처럼 몸을 움직일 근력이 생길 거라 믿는다.
궁극적으로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은 운동이 아니다. 생활에 근력을 기르고 버티는 지구력을 만드는 이유는 좋아하는 일들을 꾸준하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건강하지 못해서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면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할까 하는 마음에 매일 퇴근 후 헬스장으로 직행한다. '오늘은 oo 한 날인데 그냥 하루 쉴까?' 하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으려 머릿속을 매 시간 리셋한다. 핑계 대다 놓친 일들 투성이인데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어설픈 자세로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뭐라도 되어 있겠지. 엉성하게 보낸 메일이 벌써 수북하게 쌓인 것처럼 말이다. 할머니 작가가 되기 위해서 오늘 컴퓨터 앞에 앉는 연습부터 해 본다. 소파가 아무리 처절하게 날 불러댄대도 오늘은 못 이기는 척 눕지 않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