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Dear 명랑 핫도그,
연희동은 우리 집에서 언덕배기 하나 넘으면 나오는 가까운 동네다. 아무 계획 없는 주말이면 눈꼽 붙은 얼굴로 대뜸 "연희동이나 갔다 오자."라고 말할 만큼 우리가 친숙하게 여기고 또 좋아하는 동네이다. 우리 구(區)는 마포구와 서대문구와 가까워 망원동이나 연희동을 자주 놀러 가곤 하는데, 마포구인 망원동은 6호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10분이면 도착하는 반면, 서대문구인 연희동은 지하철이 없어 버스를 타고 여러 동네를 돌고 높은 언덕을 넘어야 다다를 수 있다. 거리상으로는 망원보다 훨씬 가까운데 교통이 불편해 거진 30분이 넘게 걸린다. 그럼에도 우리가 연희동을 좋아하는 이유가 뭘까.
어떤 분이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인 부암동에 관해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분은 부암동에 대해 "지하철이 없어서 서울 치고는 비교적 한적하고 땅의 울림이나 소음이 적은 곳. 그런 동네에서는 평범하게 실패하고 실수해도 어쩐지 기분이 좋더라"라는 말을 남겼다. 그 문장에서 우리가 연희동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서울 땅에서 지하철역이 설치되어 있지 않은 동네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지하철이 없는 연희동에 갈 때마다 돌아 돌아 가야 하는 수고로움에 번번이 불평을 늘어놓고는 했었는데, 지하철이 없기 때문이야말로 연희동은 우리가 좋아하는 한적하고 고요한 동네의 조건을 갖춘 것이다.
토요일 오후, 연희동을 향할 때마다 우린 시간을 확인한다. 우리의 연희동 루틴은 1) 메뉴팩트 커피에서 신선한 원두를 사고 맛있는 커피를 테이크아웃 해 2) 바로 옆 가게인 에브리띵 베이글에서 따끈따끈한 베이글 샌드위치를 구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메뉴팩트 커피는 오후 여섯 시에 영업 종료이고, 베이글 집은 오후 세시 삼십 분쯤에 마지막 주문을 마감하기 때문에 두 곳을 다 가기 위해서는 시간을 엄수해 연희동에 도착해야 한다. (심지어 이 두 곳은 일요일 휴무다.) 어떻게 각 분야에서 너무나도 빼어난 두 가게가 이렇게 인접해 있을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요즘 가게 트랜드와는 다르게, 이리도 일찍 영업을 종료하는 건지 연희동에 갈 때마다 마음이 급해진다. 금방 나온 따끈따끈한 베이글 샌드위치와 향이 진하게 올라오는 커피를 두 잔 들고 3) 근처 어린이 공원 정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음식을 즐기는 것으로 연희동 루틴은 종료된다.
연희동은 주거지가 많은 동네라 아주 고요하다. 작은 골목 사이를 걸어 다니는 연인들이나 가족들을 보면 모두 느긋해 보인다. 누구 하나 부자연스럽지 않고 과하게 꾸미지 않은 모습으로 자신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산하며 연희동을 빛낸다. 나의 편안한 차림도 그 모습에 이바지하는 것 같아 연희동을 활보할 때 약간의 뿌듯함을 느낀다.
또 한 가지, 우리가 연희동에서 아주 많이 좋아하는 곳이 있다. 조금 의외일지도 모르는 프랜차이즈, 명랑 핫도그이다. 명랑 핫도그는 전국에 지점이 다 있는데 왜?라고 생각하겠지만, 찬찬히 생각해 보시라. (명랑 핫도그 지점은 전국에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니.) 우리 동네만 해도 그렇다. 우리 동네에서 명랑 핫도그를 먹으려면 애매하게 먼 동네까지 가야 한다. 출출할 때 딱 먹으면 그리도 적당한 것이 없는데 왜 이렇게 지점이 없는 건지 모르겠다. 그러나 고맙게도 연희동에는 정감 있는 내부를 가진 명랑 핫도그가 있다. 우리는 연희동 동네를 걸어 다니다가 출출해지면 "명랑?" 하고 - 마치 사무라이가 상대의 목을 치기 전과 같은 근엄한 분위기로 - 상대에게 묻는다. ('명랑'이라는 단어가 주는 위엄성 때문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제까지 한 번도 상대가 거절했던 적이 없는 물음이기도 하다.
연희동 명랑 핫도그 집 사장님은 참 친절하시다. 중년 부부 사장님 두 분께서 운영하시는데, 늘 가게에서 먹고 가는 우리에게 플라스틱 접시에 받친 뜨끈뜨끈한 핫도그를 내주시며 소스 잘 뿌려서 맛있게 먹으라고 해 주신다. 성급하게 베어 무는 핫도그에 입천장이 데이는 서로를 보며 낄낄거리면서 핫도그를 먹다가 줄줄이 가게에 들어오는 손님들을 구경하곤 한다. 가게 내부가 작기 때문에 손님을 직관할 수밖에 없는데 하루는 외국에서 살다가 한국에 이사 온 지 얼마 안 되었다는 분이 가게에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하는 친절한 사장님의 인사에 그 손님은 머뭇거리며 가게에 들어왔다. 메뉴판도 들여다보고 가게 내부에 붙어 있는 각종 연예인들의 사인도 구경하다가 이윽고 사장님에게 물었다.
"혹시 사람들은 어떤 걸 먹나요? 제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돼서 잘 몰라요. 추천 메뉴 같은 거 있나요?"
"아, 그러셨구나. 저희 핫도그 한 번도 안 드셔보신 거죠? 그러면 보통 점보 핫도그나 반반모짜 많이 드세요. 아니면 감자 토핑 올라간 감자 핫도그도 많이 드시고요."
우리가 마침 가게 구석 자리에서 점보 핫도그 하나와 감자 토핑을 묻힌 반반모짜를 먹고 있던 와중이었다. 사장님이 그 손님에게 추천한 메뉴가 공교롭게 그와 거리에서 우리가 먹고 있던 메뉴라서, 엄청나게 맛있다는 - 실제로도 맛있었지만 더 확실하게 - 티를 내며 우리가 좋아하는 명랑 핫도그를 홍보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행동으로 실천하기 시작했다. 마치 사장님이 섭외한 사람들 마냥 나는 설탕을 반만 묻히는 게 맛있네, 나는 점보 핫도그 소시지가 더 좋더라,라는 말을 연거푸 해댔다. 괜히 그 손님의 기색을 살피게 되고 '이게 진짜 맛있는데 이상한 걸 시키면 어쩌지' 조바심이 났다. 드디어 그 손님이 주문을 했다.
"그럼 반반모짜 하나 주세요."
"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우리 핫도그 맛있어요. 외국에도 명랑 핫도그 있긴 하다던데, 한국에서 파는 거랑은 맛이 다르다더라고요. 그래도 줄 서서 먹는다고 하던데, 맞나요? 우리 핫도그는 쌀가루로 튀김옷을 만들어서 쫄깃하고 바삭해요. 아마 좋아하실 거예요. 맛있을 거예요."
자부심과 전문성이 느껴지는 사장님의 설명에 나도 핫도그가 하나 더 먹고 싶어졌다. 수많은 명랑 핫도그 가게 중에서도 돋보이는 사장님의 지식과 자부심 덕에 우리가 이곳을 좋아하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기분이 들어 어깨가 으쓱해졌다. 사장님이 핫도그에 '우리'라는 호칭을 붙인 것도 자부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핫도그를 먹다 말고 그에게 말했다.
"우리 동네에도 명랑 핫도그 생기면 진짜 대박 날 것 같지 않아?"
"대박이지. 동네에 학생들도 많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살아서 진짜 잘 될 텐데."
"우리도 명랑 핫도그 먹으러 연희동까지 버스 타고 오는데 말이야. 대체 왜 아직 없을까 몰라."
그 이후, 나는 한동안 응암동을 돌아다니며 명랑 핫도그 가게를 차리면 좋을 것 같은 가게 자리를 찾아다녔다. 개업을 할 용기는 없지만 왠지 누구라도 우리 동네에 명랑 핫도그 하나 내면 대박일거라는 생각으로. 그 생각을 일 년 넘게 하고 있던 와중에 놀랄 일이 일어났다.
건널목을 지나 여섯 평이 될까 말까 한 아주 작은 가게는 원래 <M&T>라는 - 액상 전자담배 가게처럼 생겼으나 의외로 - 머핀과 타르트를 파는 가게였었다. 그 가게가 개업할 때 우리는 "엠앤티...? 전자 담배 팔 것 같이 생겼는데 머핀이랑 타르트 파는 곳이래. 묘하다... 아무리 봐도 여기가 딱 명랑 핫도그 자린데..." 하고 혀를 끌끌 찼다. 맛도 그저 그렇고 간판도 왠지 전자담배가 생각이 나서 한번 가보고 발길을 끊었는데, 진짜 곧 망할 것 같아서 그 앞을 지날 때마다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가게에서 눈길을 돌려야 했다. 결국 그 묘한 M&T는 일 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장사를 접었다. 그리고 그곳에...! 떡하니 현수막이 걸렸다.
<Grand Open 명랑 핫도그 7월 말-8월 초 오픈 예정.>
작은 상가는 이제 M&T가 아니라 명랑 핫도그로 거듭났다. 현수막을 발견하자마자 나는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소리를 꽥 지르고야 말았다.
"거봐! 내가 뭐랬어! 여기는 M&T가 아니라 명랑 핫도그 자리라니까!"
그곳에 명랑 핫도그가 생긴다는 현수막이 걸리고 우리는 언제든 반반모짜와 점보 핫도그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에 취해 하루 빨리 우리 동네 명랑 핫도그가 장사를 시작하길 고대했다. 연희동으로 향하던 발걸음도 줄고 멀리 갈 필요 없이 집 앞에서 핫도그를 먹을 수 있는 기쁨을 한껏 누리며 말이다. 내가 예상한 대로 우리 동네 명랑 핫도그는 대박이 났다. 연희동 명랑 핫도그보다 사람이 훨씬 많다. 늘 줄이 길어 집 앞이어도 간단히 사 먹기가 힘들 만큼 문전성시를 이루는 중이다.
우리 동네 명랑 핫도그 사장님도 연희동 사장님만큼 자부심 있게 핫도그를 판매했으면 좋겠다는 행인 1의 시시한 바램을 품는다. 작은 가게는 느리고도 불편해도, 그 가게가 거기에 존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엄청난 기쁨을 준다는 것을 우리 동네에 명랑 핫도그가 생기며 새삼 느꼈다. 내가 연희동을 좋아하는 이유도 사실 좋아하는 가게들이 많기 때문이니까. 마음이 가는 가게들이 많아지면 결국에는, 세상이 좋아지지 않을까. 나도 언젠가 사랑받는 동네에 사랑받는 가게 사장님이 되고 싶다는 꿈을 꿔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