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요즘 우리 집 좀 괜찮나요?
퇴근 한 시간 전이다. 손바닥이 축축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죽상을 하고 집에 가는 내 모습이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비치면 어디 도살장에라도 끌려가는 사람 같다. 요즘 집에서 하는 행동 죄다 눈치가 보인다. 걸어 다니는 것부터 화장실에 가고 청소를 하는 것까지 조심스럽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났다가는 또 호되게 혼이 나고 말테니 작은 행동에도 주의를 기울이곤 한다. 나의 작고 고요하고 평화롭던 집은 며칠 사이 노쇠하고 위험하고 불안해졌다. 어제는 혼자 설거지를 하는데 일부러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놨다. 언제 또 집 전체가 쿵쿵쿵 울릴지 모르니 마음만 내내 졸이게 된다.
문제의 쿵쿵쿵 소리는 이전부터 종종 불시에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그 소리가 정확히 우리 집을 향해 쏘아진 것이라는 걸 알게 된 건 몇 주 전쯤이었다.
쿵쿵쿵
글자로 표현하면 귀엽게까지 여겨지는 이 소리에 정말 감정이 담겨 있었던 게 맞느냐 묻는다면 나는 큰 대문자 알파벳으로 YES라고 그릴 것이고, 그래서 그 감정이 무엇이었냐 묻는다면, 두 개의 한자로 표현할 것이다.
분노(憤怒)
신원미상의 '분노'는 내가 인식하기 전부터 모든 힘을 실어 천장인지, 바닥인지, 벽인지 모를 곳을 두들겨 댔는데, 며칠 전부터 그 소리가 마치 내게 고함을 치거나 멱살을 잡는 것 같은 구체적인 형상으로까지 보이기 시작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금요일 저녁, 기분 좋게 들어와 여느 때와 같이 집안 청소를 시작했다. 방바닥을 구르는 고양이들의 털 뭉치와 고양이 화장실 모래알을 열심히 빨아들이는데 방바닥을 크게 진동하는 분노에 찬 소리가 우리 집을 향해 쏘아졌다.
쿵쿵쿵!
처음엔 바닥을 울리는 진동 소리에 놀라 청소기를 멈추고 놀란 토끼 눈을 하며 고양이들을 바라봤다. 두 고양이도 소리를 똑똑히 느꼈는지 심각한 표정을 하곤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몇 초의 정적이 쏜살같이 지났다. '에이, 설마...' 다시 청소기를 밀기 시작한 내 뒤통수를 휘갈기듯 다시 또 '분노'가 우리 집을 뒤흔들었다.
쾅쾅쾅쾅!
아니, 이건 우리 집을 향한 '분노'였다. 청소기 소리에 반응하는 것이니 분명 아랫집이리라고 추정되는데, 사실 그땐 아랫집인지 옆집인지를 판단할 새도 없이 '공포'가 내 마음을 휘감았다. 크기는 작지만 따스하고 다정한 내 보금자리가 '분노'로 진동하는 것을 느끼니 너무나 공포스럽고 무력해졌다. 화장실에 있던 나의 연인도 소리를 들었는지 다급하게 나오더니 이게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우리 사는 이 시대는 층간 소음에 대한 온갖 흉흉한 괴담 같은 뉴스가 터져 나오지 않나. 어쩌면 저 작은 '분노'가 내일이면 칼을 들고 우리 집 문 앞에 나를 기다리고 서 있지 않을까 싶어 눈앞이 그저 깜깜해졌다.
상상은 언제나 찰나에 몸집을 키워 날 집어삼킨다. 불과 몇 분 전만 해도 기분 좋게 취기가 돈 상태였는데 한순간에 겁에 잔뜩 질려 버렸다. 연인은 옆에서 설마 우리한테 하는 소리냐며 물었고 나는 울컥 짜증이 났다. 나도 몰라. 나도 모른다고. 그렇게 머릿속에선 생각들이 비죽비죽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내 집에서 청소기도 못 돌린다고? 아니 근데 아랫집이 맞을까? 시끄러우면 올라오던가 쪽지를 붙이면 될 텐데 왜 저러는 거야? 아니, 어쩌면 내가 이때까지 둔하게 살아서 눈치를 못 챘을 수도 있어. 저 사람도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이런저런 걱정과 공포가 뒤 감긴 생각 더미들이 내 가슴팍에 묵직하게 올려져 답답한 마음으로 잠을 청했지만 머리는 계속 내일은 일찍 청소기를 돌려야겠다는 생각만 곱씹었다. 다시 휴대폰을 켰다. 뻑뻑한 눈을 떠 층간 소음에 관해 검색해 보았다.
'층간 소음 복수', '층간 소음으로 인한 살인', '층간 소음 윗집 테러'...
분노에 싸인 키워드들이 '층간 소음'이라는 글자를 채 치기도 전에 자동완성되었다. 층간 소음으로 위아래 세대의 감정싸움이 격해지며 윗집, 아랫집 이웃들이 얼굴을 붉히고 경찰들이 대동되었다는 글들은 정말 무수히 쏟아져 나왔다. 이렇게 무한히 스크롤이 가능할 것 같이.
이 집에 이사 오기 전 대구에 살 당시, 나 또한 층간 소음의 피해자이기도, 가해자였기도 했다. 대구에서 처음 얻은 방은 빌라의 가장 아래층이었다. 그때는 고양이도 키우지 않았고 칠 평 남짓한 원룸에 혼자 살았기 때문에 나의 생활 소음은 크지 않았지만 화장실에서는 항상 더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빌라 구조상 옆집의 화장실과 서로 등을 지고 있기 때문에 옆집 사람의 존재를 화장실에서는 더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카악, 퉤! 하는 가래침 뱉는 소리부터 소변보는 소리, 재채기 소리까지 들려오니 나의 소리도 들릴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집 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조용히 방에 앉아 있으면 윗집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눈앞에 그려지듯 소리가 들렸다. 윗집 사람이 화장실에 가는 소리,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하지만 다세대 주택에 사는 이상 감수해야 할 일이었다. 사람이 어떻게 유령처럼 살 수 있으랴 하고 생각하며 그냥 그러려니 했다. 조용한 집에 노래도 틀고 티비도 틀면 소음은 자연스레 섞이기 마련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간혹 윗집이 새벽에 세탁기를 돌린다든지, 늦은 시간 발망치질을 하면 아무리 무던한 나라도 신경이 거슬렸다. 나는 그때 왜 분노로 천장을 망치질할 생각을 못 했을까. 지금 우리 아랫집처럼 말이다.
부동산 앱을 둘러보던 어느 날, 내가 사는 빌라 맨 꼭대기 층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 층간 소음과 더불어 옆 한과공장 환풍구에서 명절만 되면 매캐한 기름냄새가 창문으로 하루 종일 넘어와 고역이었던 때였다. 나는 조금의 고민도 없이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했다. 아랫집보다 평수도 훨씬 넓고 소음과 냄새에서도 해방이었다. 위층 사람들에겐 이런 고요와 평안이 매일매일 당연하게 보장되어왔다는 게 조금 억울하기도 했지만 이젠 내가 누리면 될 것이니 불평할 이유조차 없었다. 꼭대기 층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뒤 아기 고양이, 오트를 기르게 되었고, 또 얼마 안 가 지금의 연인을 만나게 되며 연인의 고양이, 호미 또한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짧은 시간 사이 고양이 두 마리가 뛰노는 옥탑방이 된 것이다. 나는 행복에 겨워 편하게 집을 활보하고 밤에도 빨래를 돌리고 늦은 시간에도 청소를 하고 고양이들은 새벽마다 뛰놀았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오니 집 현관문에 쪽지가 붙어 있었다.
아래층입니다. 새벽 시간대의 소음으로 잠을 못 잡니다. 소리는 아니고 쿵 하거나 드르륵하는 진동이 들립니다. 계속 참고 지내다가 쪽지 남깁니다.
순간 얼굴에 불이 붙은 듯 확 달아올랐다. 제 잘못은 좀처럼 몰랐던 내 모습이 너무나 창피하고 그간 참고 참았을 아래층 이웃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이 들어 현관에 망부석처럼 서서 그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그때 나는 왜 층간 소음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했을까. 새벽에 뛰노는 고양이들을 말릴 생각을 해본 적이 있던가. 맨 꼭대기 층에는 우리 집밖에 없으니 잘못을 누구에게 떠넘길 수도 없다.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리고 싶은데 아래층엔 세 집이 있어서 어디에서 쪽지를 붙이고 갔는지도 모른다. 일단 깍듯이 사과를 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해 세 개의 선물 꾸러미와 작은 쪽지를 준비해 모든 집 앞에 조용히 두고 왔다
새벽시간 대의 소음으로 피해를 끼쳐 정말 죄송합니다. 저도 층간 소음이 얼마나 신경 쓰이고 힘이 드는지 압니다. 맨 꼭대기 층으로 이사 온 것도 그런 이유였었는데, 윗집에 살다 보니 잊고 지낸 것 같습니다. 새벽 시간에 잠을 못 주무셨다니 너무 미안한 마음입니다. 주의하고 배려해 생활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시끄러워진다면 쪽지 붙여주세요. (가능하시다면 호수를 알려주세요. 그 위치를 좀 더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따뜻한 크리스마스와 연말 보내시길 바라요.
이후에는 방 안 전체에 롤 매트를 깔았고 취침시간이 되면 고양이들을 모두 방 안으로 데려와 재우며 층간 소음에 각별히 주의했다. 그 당시 얼마나 죄스러운 마음이었는지 고양이들을 다 떠나보낼 생각까지도 할 정도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쪽지가 붙지 않았고 고양이들은 귀양살이 없이 나와 살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또다시 층간 소음의 가해자이며 피해자 신세가 되었다. 청소기를 돌리거나 고양이들과 노는 동안에 소음이 발생하면 또 아랫집에선 득달같이 천장을 부술 듯 쾅쾅쾅 친다.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딱 우리 집만 지진이 난 것 같다. 쪽지라도 남겨주면 좋을 텐데 우리가 알아챌 수 있는 건 쿵쿵쿵 하고 땅을 울리는 소음밖에 없어 아직도 그 '분노'를 아랫집이라 추정할 뿐이다. 우리 집이 윗집이니 당연히 더 신경 써서 주의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아랫집의 날선 분노가 바닥을 울리기만 하며 대화를 거부하니 난 나날이 피가 말라간다.
요새는 고양이들이 우다다 하며 시끄럽게 하진 않을까 새벽 5시 즈음 일어나 노심초사하며 아이들을 달래고 있다. 며칠 전 새벽 5시가 조금 지났을 무렵, 또 쾅쾅쾅쾅! 하고 분노가 표출되었기 때문에 밤잠도 설치며 깜깜한 새벽, 보초를 서고 있다. 청소기도 되도록 9시 이전에 돌리려고 하고 빨래도, 고양이들과 놀아주는 것도 밤늦은 시간에는 일절 하지 않으려고 긴장하니 매일이 피로하다. 매일 발뒤꿈치를 살짝 들고 조심조심 걸어 다닐 때 아래층에 내려가서 시원하게 묻고 싶다.
"요즘 우리 집 좀 괜찮나요?"
살인도 서슴지 않는다는 층간 소음 문제 겪으니 사람이 무서워지고 감정은 격해져만 간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는 이웃 중 혹시 아랫집 사람이 있진 않을까 움츠러들게 되고 다른 집들은 층간 소음에 시달리지 않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닭장처럼 빼곡하게 쌓아 올려진 오피스텔 건물을 보니 마음이 갑갑하다. 내 양옆도, 내 아래와 위도 각각의 귀한 인생들이 놓여 있을 텐데 서로를 모르니까, 세상이 흉흉하니까 입을 닫고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피하며 살아간다. 언제쯤 우리는 다시 이웃이 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