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멋진 고양이
우리 엄마는 잠을 잘 때 늘 내가 누울 자리를 조금 남겨둔다. 내가 언제나 엄마 다리 사이에 들어가서 잘 수 있도록 말이다. 그래서 잠을 자는 엄마의 모습은 늘 엉거주춤하다. 몸은 똑바로 누운 상태지만 양 다리는 게 다리춤을 추는 것 같이 동그랗게 벌리고 불편하게 잠을 잔다. 내가 다리 사이에 없어도 똑같다. 새벽에서야 내가 거기 없다는 걸 깨닫고 편하게 다리를 뻗고 자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심술 맞게 다시 엄마 다리에 비집고 들어가 눕는다. 엄마가 언제나 나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가 언제까지나 내 자리를 남겨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엄마가 집에 없을 때도 엄마가 눕던 그 자리에서만 잠을 잔다. 엄마가 없어도 엄마 자리에서는 엄마 냄새가 나니까. 나는 세상에서 우리 엄마가 제일 좋다.
우리 가족은 네 명이다. 엄마와 나, 호미 오빠와 아빠.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에 길러졌다. 엄마와 만났을 때 나는 너무 어려서 응가도 쌀 줄 몰랐다. 먹는 밥이 전부 배에 쌓여만 갈 때 빵빵하게 부푼 내 배를 보고 엄마가 젖은 수건으로 엉덩이를 마사지해 주었다. 처음에는 싫어서 울기만 했는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 알게 되어 비로소 응가를 쌀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내 전부다. 하지만 어떻게 엄마를 만나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 기억은 전부 엄마와 함께한 것들뿐이니까. 물론 엄마가 나의 진짜 엄마는 아니라는 걸 안다. 예전에 호미 오빠가 알려준 적 있다. 엄마는 인간이고 나는 고양이라고. 하지만 내가 아는 한 엄마는 나의 진짜 고양이 엄마보다도 나를 더 사랑할 것이다.
어느 날, 호미 오빠가 나는 고양이로써 불리한 조건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길 생활을 하기에 발바닥이 너무 부드럽고 입 옆에 난 수염은 관리를 제대로 못해 뚝뚝 끊겨 있어 감각이 떨어질거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시무룩해졌다. 나는 왜 이런 고양이일까. 왜 호미 오빠처럼 강하지 못한 걸까. 내 발바닥은 핑크색에 아기 엉덩이처럼 부드럽다. 입 주변에 난 수염은 장난 치다 맨날 부러지기 일쑤다. 내 꼬리는 구부러져 짧고, 털색은 이도 저도 아니게 희끄무레하다. 코에는 지워지지 않는 갈색의 점도 있다. 호미 오빠만 보아도 내가 다른 고양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빠는 길고 쭉 뻗은 멋진 꼬리도 가지고 있고 털색도, 무늬도 진하고 멋지다. 우리와 살기 전, 길에서 살았던 호미 오빠는 길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나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길 고양이들은 각자 구역을 나누어 생활한다고 했다. 오빠가 있던 구역은 대구에 있는 어느 공원이었는데, 그 일대에서 오빠는 심지어 대장이었다고 한다. 오빠에게 어떻게 대장이 되었냐 물으니 일단 얼굴이 커야 한다고 했다. 내 얼굴은 너무 작은데...
"근데 왜 대장 고양이는 얼굴이 커야 해?"
"얼굴이 크면 멀리서도 그 고양이를 볼 수 있잖아. 그러면 다른 고양이들이 멀리서 보고 먼저 도망가기 시작하니까. 오빠가 얼굴이 큰 거 알지? 오빠가 그 공원 우두머리였어."
"그럼 나는 얼굴이 작아서 대장 못하겠네, 그치?"
"쉽지 않지. 그리고 너는 꼬리도 너무 짧고 꺾여 있잖아. 털색도 너무 희미하고... 그래도 오빠가 있으니까 상관없어. 오빠가 대장이니까 너는 대장 동생 하면 돼."
왕년에 대장이었다던 호미 오빠는 지금도 매일 밤 체력훈련을 한다. 엄마와 아빠가 잠에 든 사이, 거실과 계단을 총알같이 오가며 뛰어다닌다. 처음에 오빠가 왜 그러는지 전혀 몰랐었다. 한번은 왜 밤마다 뛰어다니는 거냐고 내가 묻자 오빠는 고양이로써 항상 체력을 단련해놔야 한다고 했다. 길에서 사는 고양이들은 쥐도 사냥해야 하고 새도 쫓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스피드를 기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나는 호미 오빠처럼 달리기가 빠르지 않다. 엄마가 주는 밥이 너무 맛있어서 오빠 밥까지 다 먹었더니 뱃살이 늘어서 몸이 무겁다. 그래도 요즘은 오빠를 따라 나도 매일 밤 우다다 뛰어다닌다. 엄마가 뛰지 말라고 소리 지르지만 나도 호미 오빠처럼 멋진 고양이가 되고 싶다.
며칠 동안 나는 우울했다. 나는 호미 오빠 말고는 고양이 친구도 없고 무리도 없다. 오빠는 고양이 친구들도 많고 심지어 대장이었다는데... 아무리 오빠를 따라다니면서 열심히 노력해도 나는 구부러진 꼬리에 말랑한 발바닥을 가진 약한 고양이일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영 기운이 나지 않았다. 엄마가 맛있는 간식을 줘도, 오빠가 장난을 걸어도 예전만큼 신이 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나에게 슬쩍 다가와 조용히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가 손가락을 세워 빗질해 주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나는 가만히 엄마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엄마는 언제까지고 쓰다듬어 줄 수 있을 만큼 오랫동안 내 털을 쓸어내리다가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오트야. 오트는 구부러진 꼬리가 매력이야. 호미 오빠처럼 길고 쭉 뻗은 꼬리도 물론 멋지지만 오트 꼬리는 해리포터 이마에 있는 흉터 같은 거야. 그게 얼마나 멋진 건데? 엄마는 오트를 잃어버려도 이 꼬리로 오트를 한눈에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리고 털색은 얼마나 멋져? 오트처럼 고급스러운 털색을 가진 고양이도 없을걸? 앞발에는 흰색 발가락 양말 신고, 뒷발에는 긴 양말 신은 것도 정말 귀여워. 오트야. 너는 너라서 멋진 거야. 다른 고양이들을 부러워하지 않아도 돼. 너는 이미 너라서 멋지니까.
엄마는 이런 얘기들을 나에게 속삭이며 내 이마에 뽀뽀를 했다. 엄마는 맨날 나에게 이쁘다고 한다. 꼬리도 이쁘고 털도 이쁘고 뱃살도 이쁘고 젤리도 이쁘다고. 내가 보기엔 너무 보잘것없는데 말이다. 엄마는 고양이가 아니라서 고양이들의 멋짐을 모르는 거라고. 내 모습은 하나도 멋지지 않다니까. 나도 호미 오빠처럼 멋진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어느 날, 엄마랑 아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의선이는 어쩜 글도 잘 쓰고 디자인도 잘하고 요리도 이렇게 맛있게 해? 못하는 게 도대체 뭐야, 대체."
"무슨 소리야.. 나도 글 잘 쓰고 디자인도 잘해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요리는 눈대중으로 하는 거라 다음에 하면 똑같은 맛도 못 낼 텐데 뭐.."
"그게 진짜 잘하는 거야! 레시피 보고도 맛도 못 내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데. 의선이 글이 어때서 그래! 얼마나 미소 짓게 하는데. 의선이가 메일 보내면 아끼고 아꼈다가 퇴근하면서 읽는다니까? 유튜브나 인스타그램보다도 훨씬 재밌어. 남의 일기장 들여다보는 것처럼."
"에이... 너니까 이렇게 그렇게 생각하지..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아빠는 계속 엄마가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람인지 말하는데 엄마는 아빠의 말을 절대 안 믿는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에도 엄마는 멋진 사람인데...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야, 엄마! 엄마는 엄마라서 멋진 건데, 정작 그 사실을 엄마만 모른다. 호미 오빠도 엄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멋진지, 매일 엄마 배를 마사지하며 얘기해 주는데 그게 고양이 말인지라 엄마는 시끄럽다고만 한다.
"오빠, 나는 꼬리도 구부러지고 털색도 이상해서 하나도 안 멋지지?"
"아니? 오트 네가 얼마나 예쁜데. 왜 그런 생각을 해?"
"아니... 오빠가 저번에 나는 그랬잖아. 나는 대장 고양이 못할 거라고. 나는 털도 오빠처럼 멋지지 않고.. 꼬리도 꺾여 있잖아."
"오트야, 고양이로 살려면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알아?"
"힘? 스피드? 큰 얼굴?"
"아니. 그것들보다 더 중요한 건 귀여움이야."
"귀여움?"
"응, 귀여움. 길에서 살려면 인간들의 도움이 생각보다 많이 필요하거든. 인간들이 우리를 미워하면 우리는 죽을 수도 있어. 근데 어떻게 길에서도 잘 사는 고양이들이 있는 줄 알아? 귀여워서야. 귀여운 고양이들은 아주 잘 살아. 사람들이 귀엽다고 이쁘다고 먹을 것도 갖다주고 머물 곳도 챙겨주거든. 오트, 너는 대장 고양이는 못 됐어도 인간들한테 엄청 예쁨 받았을걸? 이미 네가 엄마랑 살고 있는 거 자체가 그 증거야. 네가 아주 특별해서 엄마는 너를 키우기로 한 거야."
엄마가 매일 나에게 하는 말이 입바른 소리가 아니라고, 정말이라고 오빠는 말했다. 남과 비교하면 절대 나다워질 수 없는 거라도 알려주었다. 맞아. 아빠가 엄마에게 늘 말하는 거처럼 나는 나라서 특별하고 멋진 거였어! 비록 호미 오빠처럼 대장 고양이는 못 되어도 나는 나다워서 멋진 고양이니까 괜찮아. 나는 우리 집의 멋진 고양이야!
<멋진 고양이>
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