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4학년, 드디어 나도 졸업 학년인 시니어가 되었다. 그 해부터 내 인생의 궤적은 아주 크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도 그랬다. 우리 학교는 당시 다운타운 중심에 있는 낡고 오래된 건물을 사용했는데, 도시 재정비 사업이 시작되며 아주 크고 넓은 부지에 새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마침 내가 시니어가 되는 해에 새 학교 건물로 이사를 가게 되며, 나를 포함한 전교생이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되었다. 시니어가 되는 것도 신나는 일인데, 새로운 건물에서 학교생활을 한다니! 모든 게 새것인 환경은 나도, 친구들도 한껏 들뜨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나의 필리핀 학창 시절, 제2부가 시작되었다.
필리핀에는 행사가 참 많다. 동네마다 '피에스타'라는 이름의 축제가 때때로 열리고, 일 년에 한번씩 시티 차원에서 주최하는 아주 큰 축제가 열린다. 필리핀 사람들은 파티의 민족이다. 한번은 다운타운 근처에 사는 친구인 리헤사가 자기의 동네가 이번 주 피에스타 기간을 맞았다며 나를 초대한 적이 있었다. 동네 피에스타는 주로 일주일 간 열리는데, 각 집집마다 근사한 요리를 넉넉히 준비해 대문을 열어두고 손님들을 맞이하곤 한다. 마당에 달린 스피커에서는 신명나는 필리핀 가요와 트로트가 흘러나오고, 부엌께서는 일주일 내내 지글지글 음식 하는 냄새가 폴폴 풍겨져 그 골목을 지나가기만 해도 군침이 돌 정도다. 필리핀 친구들은 보통 가족 대대로 같은 지역, 같은 동네에 사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피에스타 기간에는 친척 동생, 언니 오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 할 것 없이 집을 다녀가곤 한다. 배를 넉넉히 불리고도 더 못 먹겠다고 할 때까지 음식을 내어주는 것이 피에스타이다. 나는 리헤사 덕분에 정겨운 필리핀의 문화인 피에스타를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날 학교 수업을 마치고 우리는 리헤사네 집에 가기로 했다. 빈손으로 가도 괜찮을까 조금 걱정이 되었지만, 다른 친구들이 아주 가벼운 마음인 것을 보아 나도 그냥 즐기기로 했다. 너무 설레었다. 제대로 친구들을 사귀기 시작하고 처음으로 친구의 집에 초대를 받은 것이었다. 반대로 혹여나 외국인인 나를 어른들이 낯설게 여기시진 않을까 긴장이 되기도 했다. 필리핀 말을 잘 못하는 나는 친구들 뒤꽁무니만 졸졸 쫓아다녔다. 드디어 리헤사네 동네 어귀에 도착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기름냄새, 간장 냄새, 따스한 김까지 솔솔 풍겨왔다. 오랜만이었다. 한국에서도 어렸을 때 집앞 골목에서 땅따먹기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으면 집집마다 생선 굽는 고소한 냄새, 된장찌개 끓이는 구수한 냄새가 허기를 자극했다. 집집마다 풍겨오는 음식 냄새로 '오늘 이 집은 카레를 먹네', '저 집은 고기를 굽네' 하며 친구들과 간질간질 웃곤 했다. 딱 그때의 기분이었다. 나를 집에 초대해 준 리헤사가 너무 고마워 꽉 끌어안아 주고 싶었다.
리헤사네 집에 거의 도착한 그때, 하늘이 어둑어둑해지며 공기가 한순간에 습해졌다. 커다랗고 시커먼 구름덩이들이 몸집을 크게 부풀려 해를 가리고 하늘을 검게 물들여 금방이라도 투둑투둑 비가 쏟아질 기세였다. 우리 사는 지역에 태풍이 온다고 한 날이기도 했다. 그래도 집에 들어가면 비를 피할 수 있고, 날씨도 곧 시원해질 테니 리헤사가 얼른 들어가자고 했다. 리헤사네 집은 바닷가 마을에 있었다. 골목 끄트머리에는 찰랑찰랑 바닷물이 보일 정도였다. 비가 올 것 같이 하늘에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리기 시작하니, 낯선 생명체들이 마을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골목 벽과 땅바닥은 순식간에 빠르고 규칙적인 '그들'에게 점령 당하고 말았다. 까맣고 반지르르 윤기가 흐르는, 내 검지와 중지를 합친 정도로 큼지막한 그것은, 바퀴벌레였다. 순간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아무리 벌레를 안 무서워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바퀴벌레 군대를 맞닥뜨린다면 질겁을 할 것이다. 정말 정말 거대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내 반응을 보고 혹여나 리헤사가 속상해할까 싶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 웃어 보였다. 어린 마음에도 친구에게 싫은 마음을 내비치고 싶지 않았다.
이미 집에는 많은 손님들이 각자의 접시에 음식을 소복이 쌓아 올리고 있었다. 집 모서리마다 웃고 떠들고 마시는 무리가 있었다. 즐거운 피에스타가 한창 무르익은 사이, 교복을 입은 우리가 들어오니 한순간 나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리헤사네 엄마가 우리를 보며 어서 오라고 말했다. 리헤사가 나를 코리아나라고 소개하자 의자에 앉아있던 어른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코리아나 샤? (쟤 한국인이야?) 구와빠 (예쁘다) 프렌드 뇨? (너네 친구야?) 아농 알란냐 (쟤 이름이 뭐야?) 인친디한 샤 힐리가이논? (쟤 필리핀 말 알아들어?)
각자 소란하던 손님들은 나에게 무한한 관심을 표했다. 아마도 피부가 하얗고 쌍꺼풀 없이 얇은 눈을 한 내가 신기했던 모양이다. 우리는 어른들이 쥐여주는 접시와 수저를 들고 음식 앞에 쪼르륵 서서 음식을 담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음식을 먹고 싶은 허기보다 바퀴벌레의 존재감이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리헤사네 집에 들어오면 바퀴벌레에서 해방될 줄 알았건만, 이놈의 바퀴벌레들은 사생활도 없는 건지 집안 곳곳의 벽과 천장을 일정한 방향으로 기어다니고 있었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엄청나게 커다란 저 바퀴벌레가 벽에서 떨어져 음식이 담긴 내 접시에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나는 모든 걸 내팽개치고 줄행랑을 칠 마음이었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다른 손님들은 아주 평온해 보였다. 다들 바퀴벌레가 아무렇지 않은 건가? 원래 바퀴벌레하고 같이 공생하는 사이인 것인가? 머리가 지끈 지끈했다.
내 눈동자가 바퀴벌레의 움직임을 따라 바삐 움직이니 리헤사의 할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여기가 바닷가라서 그런단다. 태풍이 다가오는 걸 이놈들도 아는 모양이지. 원래는 이곳이 이렇지 않은데... 오늘 비가 많이 오려나보구나. 미안하다, 아가야."
나는 아무렇지 않다고, 괜찮다고, 손을 내두르며 접시에 담아온 음식을 열심히 먹었다. 가끔 커다란 바퀴벌레가 땅에 툭 떨어지면 내 심장도 쿵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으로 나를 집에 초대해 준 리헤사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날 기분 좋게 많이 먹고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돌아왔다. 그날은 내 필리핀 생활 중 잊지 못할 기억이 되었다. 손님으로 초대된 곳에서 손님으로써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방긋방긋 웃으며 체할 정도로 많이 먹고 돌아온 그날. 그 후 나는 필리핀 친구들과 비슷하게 생활하며 살았다. 그들의 피에스타에 가고, 안전장치가 허술한 놀이 기구를 타고, 더러운 길거리 음식을 집어먹으며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다가가기 어려웠던 친구들의 정다운 가족들을 보고, 그들의 집에 초대되어 보니 한결 그들이 편해졌다. 그들도 나와 똑같은 평범한 딸이고, 아들이고, 가족이었다.
"나도 예전에 한국에서 살 때 친구들이랑 골목에 앉아서 놀았어. 한국에도 비슷한 문화가 있어. '잔치'라고 말해. 피에스타 같은 거야. 마을 사람들이 같이 먹고 마시고 놀아. 한국 할머니들도 그래. 배부른데도 계속 먹으래.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고. 너네 할머니 뵈니까 우리 할머니도 보고 싶다. 우리 동네도 비슷해. 다르지 않아. 너네랑 똑같아."
다음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