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은 나에게 그 어떤 장소보다 선명하고 진한 기억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내가 가졌던 어리숙함, 못남, 열등감, 피해의식 같은, 커다란 오물 덩어리를 숨겨두고 온 곳이이라 그런 걸까. 필리핀에서 유학을 하던 중에도,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에도 나는 내가 필리핀에서 오랜 시간 유학했다는 사실을 남들에게 곧잘 숨기곤 했다. 창피한 소리지만 몇 년 전까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유학을 했다 말하기도 했다. 필리핀에 오래 살았다고 말하는게 부끄럽고 싫었다. 이 감정은 꽤 오랜 시간 내 마음에 담겨 소리 없이 찰랑찰랑 댔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며 카톡으로 대화하고 보이스톡으로 통화를 할 때, 나는 명동 뒷골목에서 3만 원짜리 국제전화카드를 사 필리핀에 있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학 동안 한국에서 지내며 남자친구에게 연락할 수 있는 길은 그 방법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페이스북 메시지로 연락을 하곤 했지만, 인터넷 연결이 좋지 않아 음성 통화까지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3만 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산 전화카드를 사용해 매일 5분, 10분씩 통화를 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 알뜰하게 사용했지만, 몇 분 남지 않았을 때 통화를 하면 가차 없이 통화가 종료되곤 했다. 한국은 모든 것에서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며 발전했고, 필리핀은 모든 게 구식이었다. 한국 친구들은 왜 보이스톡을 사용하지 않냐 물었다. 두 나라의 문화적 배경에서 오는 괴리감에 나는 종종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한번은 내가 처음 필리핀에 와 몇 년간 한 집에 같이 살았던 언니가 다시 필리핀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함께 하이 스쿨을 다니기도 했고 언니에게 필리핀 생활의 많은 부분을 배웠는데, 몇 년 만에 돌아온 언니는 더 이상 내가 기억하는 수수하고 소박한 소녀가 아니었다. 하이 스쿨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으로 돌아간 언니는 모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하고 항공사 승무원이 되어 금의환향을 했다.
필리핀에 살던 당시, 언니는 학교에서 '코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한국인 여성을 부를 때 쓰는 필리핀어인 '코리아나'의 앞 글자를 딴 별명이었다. 큰 키에 피부가 하얗고 동그란 눈이 예뻤던 언니는 뭇 필리핀 남학생들의 짝사랑 상대가 되었지만, 언니의 진짜 첫사랑은 따로 있었다고 했다. 언니가 필리피노 남자친구와 6년간 비밀연애를 했었다는 것을 나는 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첫사랑이었던 그를 두고 한국으로 떠난 후 나와 같이 괴리감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몇 달은 장거리 연애에도 평탄하게 지내는듯했지만, 남자친구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언니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내 헤어졌다고 했다. 결국은 그렇게 되는 것일까, 나는 생각했다.
짐을 푸는 언니 곁에 앉아 언니가 가져온 물건들을 보았는데, 하나같이 값비싸고 좋은 물건들이었다. 사과 모양 향수부터 명품 화장품, 브랜드 옷... 한국에 잘 정착한 언니가 부러웠다. 한국을 떠나올 때는 어떻게든 이곳에 적응하려 했는데, 모든 것이 익숙해지고 난 뒤 나는 다시 한국의 생활이 생소해졌다. 아이폰을 손에 쥔 언니는 한국에 있는 남자친구와 밤마다 길고 긴 통화를 했다. 그 통화 끝 '사랑해 잘 자'라는 말이 너무나 생경하게 들렸다. 이 나라에 너무나 동화된 나머지 한국 사람과 연애를 생각해 본 적도 없던 나는 그런 애정표현조차 어색했다. 필리핀에 사는 나도 구식이 되면 어쩌지. 여기 있다가 필리핀 사람들처럼 촌스러워지면 어쩌지. 필리피노 남자친구의 까만 손을 보면서 문득 싫은 마음이 들어 괜히 내 하얀 손만 꼬집었었다.
필리핀에서는 무엇이든 아껴 쓰는 버릇을 들여야 했다. 여름이 유독 끈적하고 후텁한 한국에서는 어딜 가나 에어컨이 펑펑 나오지만, 일 년 내내 더운 필리핀에서는 큰 쇼핑몰을 제외하고는 에어컨을 가동하는 일이 거의 없다. 전기세가 매우 비싸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큰 필리핀에서 전기는 아주 비싼 에너지이다. 한번은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필리핀 전기세가 왜 이렇게 비싼지 설명해 준 적이 있다. 필리핀 빈민가에서는 불법으로 전기를 끌어다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소비되는 전력은 많은데 값을 지불하는 사람은 한정되니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선생님은 말했다. 나 또한 필리핀에 사는 내내 선풍기만으로 더위를 이겨내며 살았다. 너무 더워 못 견디는 날엔 몸에 물을 끼얹고 선풍기 앞에 서서 물기를 말리며 더위를 삭혔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질 좋고 무거운 종이를 사용해 책을 만들지만, 필리핀에서는 얇고 거친 갱지를 주로 사용한다. 책이든, 공책이든 사용하는 대부분의 종이가 그렇다. 한국에 돌아가 서점에 들르면 무겁고 커다란 서적에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전이 있을까 말까 한 일이지만 필리핀에선 전기가 밥 먹듯 끊어지고, 동네 놀이터 수돗가만 가도 깨끗한 물이 펑펑 나오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필리핀에선 한 달만 써도 샤워기가 꽉 막히는 석회질이 섞인 물이 나온다. 그 물로는 양치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양치할 때는 꼭 생수를 컵에 받아갔다. 하지만 그 석회질 가득한 물마저 부족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큰 통에 물을 받아두고 바가지로 물을 떠 아끼며 샤워를 해야 했다. 생활 전반에 걸친 삶이 달랐다. 필리핀에 오래 살다 보니 방학마다 한국에 나가는 게 선진 일류 국가에 가듯 설레었고 기뻤다.
결국에는 나도 쾌적하고 좋은 환경, 기회가 많은 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배워야 할 영어도 다 배웠고, 철저하게 외로워도 봤으니 나는 이제 무엇이든 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겹고 궁색한 그곳을 떠나왔다.
다음편부터 새로운 제목으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